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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23] 편의점을 점령한 문학, '민음사 빵'이 던지는 질문

  •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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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10시 사이에 들어오는데 그때 오셔야 있어요.”

요즘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 한다. 편의점에서 사람들이 찾는 것은 신상 라면도, 인기 도시락도 아니다. 하물며, 단종됐다가 재출시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포켓몬빵’이나 ‘먹태먹물빵’의 이야기도 아니다. 사람들이 찾는 건 3,700원짜리 빵 한 봉지, 이른바 ‘민음사 빵’이라 불리는 무언가이다.

민음사 빵이 입고 되자마자 품절 대란을 빚다 보니, 연차를 내고 편의점을 순회했다는 사람, 점장과 친해져 입고 시간을 미리 귀띔받는다는 사람, 원하는 상품이 나올 때까지 하루에 몇 번씩 같은 편의점을 들락거리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이런 빵 하나를 두고 벌어지는 이 진풍경은 단순한 먹거리 유행을 넘어, 지금 한국 소비 문화의 흥미로운 단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오늘 컬럼에서는 이 민음사 빵의 열풍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함께 알아보려고 한다. 


‘민음사 빵’ 열풍의 발단은 편의점 GS25와 출판사 민음사의 협업이었다. GS25는 민음사, 캐릭터 브랜드 ‘오늘의 귀여움’과 손잡고 세계문학전집과 시집의 표지를 그대로 패키지에 옮긴 빵 시리즈를 선보였다. 깨찰빵과 모카번 두 라인으로, 《사랑에 대하여》, 《오만과 편견》,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등 문학 작품의 제목과 표지가 그대로 포장지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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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앱 ‘우리동네GS’의 이벤트 이미지 캡쳐

*앱에서 주변 편의점의 ‘민음사 빵’ 재고가 없음을 나타내는 지도


그런데 이 빵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당초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출시 3일 만에 5만 개가 팔리며 매출 약 1억 5,000만 원을 기록했고, 이는 GS25 전체 빵 상품 중 매출 1·2위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이후로도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높아갔다. 출시 4주만에 누적 판매량이 100만개를 돌파했고 하루 매출 1억원을 달성했다. 매장 재고를 확인할 수 있는 GS25 자사 앱 ‘우리동네GS’의 가입자 수는 이 기간 2.5배나 늘어났을 정도이다. 이 정도면 단순한 히트 상품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라 부를 만하다.

이 열기는 편의점 매대를 넘어 중고거래 시장으로까지 번졌다. 빵과 함께 무작위로 들어 있는 투명 책갈피가 대상이었다. 세계문학전집 표지를 활용한 책갈피 15종과 시집을 활용한 5종, 총 20종에 GS25 단독 한정판 3종까지 더해지면서, 원하는 책갈피를 얻기 위해 같은 상품을 여러 번 구입하는 소비자가 늘었고, 중복으로 나온 책갈피는 당근마켓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웃돈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SNS에는 “드디어 하나 구했다”, “《오만과 편견》이 나올 때까지 빵 사냥은 계속된다”라는 인증 글이 줄을 잇고, 유튜브에는 재입고 시간과 재고 확인 요령을 정리한 구매 꿀팁 영상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민음사 빵의 열풍은 아무런 징후도 없이 돌연 발생한 싱크홀 같은 건 아니다. 열풍의 밑단에는 분명히 이런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요인들이 차곡차곡 겹쳐 있을 것이다.

그럼, 먼저 데이터를 보면서 접근해 보자.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38.5%로, 2023년보다 4.5%포인트 하락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20대의 종합독서율은 75.3%로, 전체 성인 평균의 약 두 배에 달했다. 그러니까 책을 읽는 인구는 전체적으로 줄고 있지만, 특정 세대에서는 오히려 책과 문학이 ‘힙한 것’으로 재조명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약 16만 명이 몰려 지난 해보다 1만 명 늘었고, 민음사가 서울 아이파크몰에서 진행한 팝업 행사에는 대기 접수만 400팀을 넘는 인파가 모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올림 컬럼 ‘[Trend Insight_9]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의 모순적 트렌드, 텍스트힙(Text Hip)’ 편에서도 책을 읽지는 않지만, 책과 관련된 트렌드를 다룬 적이 있다. 그래서 우선 가장 먼저 민음사 빵의 열풍은 텍스트힙 트렌드라는 이미 자리 잡은 흐름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텍스트힙은 책과 글을 읽는 행위 자체를 세련되고 개성 있는 취향으로 여기는 문화로, 지난 한두 해 사이 2030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해 왔다. 민음사 빵은 이 텍스트힙 정서를 가장 접근하기 쉬운 형태, 즉 편의점에서 3,000원 안팎으로 살 수 있는 빵이라는 형태로 옮겨온 셈이다. 무거운 책 한 권을 완독할 자신은 없어도, 좋아하는 작품의 표지가 그려진 빵을 사 먹으며 ‘나도 문학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감각을 가볍게 누릴 수 있으니, 이것보다 더 쉽고 가볍게 텍스트힙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텍스트힙의 연장선으로만 열풍을 설명하기에는 무척 아쉬운 측면이 있다. 분명 빵의 열풍에는 브랜드 전략이 소비자를 움직이게 한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간 심리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듬뿍 담겨있다.

우선 민음사 빵의 열풍에는 ‘랜덤깡’의 요소, 즉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뽑기 심리가 작동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빵 자체의 맛보다 그 안에 무작위로 들어 있는 책갈피가 흥행의 실질적인 동력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20여 종의 책갈피 중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사람들의 수집욕과 도전 의식을 자극했고,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반복 구매하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이 되었다. 이는 마치 가챠뽑기나 카드 게임의 뽑기 메커니즘과 같은 구조로, 이미 다른 산업에서 검증된 소비 심리가 문학과 결합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희소성과 오프라인 탐색의 재미’라는 요소를 들 수 있다. 매장마다 하루 서너 개씩만 들어오는 한정된 물량은 자연스럽게 품귀 현상을 낳았고, 이는 오히려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더 자극했다. 여러 편의점을 돌아다니며 재고를 확인하고, 입고 시간에 맞춰 방문하고, 점장과 친분을 쌓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작은 모험이자 놀이가 된 셈이다. 알고리즘이 알아서 알려주는 디지털 콘텐츠와 달리, 직접 발품을 팔아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을 때의 성취감이 이 열풍을 더 뜨겁게 만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랜덤하게 나오는 희소성의 물품을 오프라인에서 손에 넣는’ 행위는 가챠뽑기방이 인기를 얻으며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배경과 같다. 가챠뽑기방은 동전을 넣고 레버를 돌려 무작위로 완구나 피규어 등이 들어있는 캡슐을 뽑는 '가챠(Gacha)' 기계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무인 또는 유인 매장을 말한다. 일본의 캡슐 토이 문화에서 유래했으며, 한국에서는 ‘뽑기방’ 또는 ‘캡슐토이 매장’으로도 불린다. ‘가챠’라는 이름은 기계의 레버를 돌릴 때 나는 ‘철컥(가차)’ 소리를 일본에서 ‘가챠’라고 한 데에서 유래했다. 

이 가챠뽑기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돈을 넣어도 원하는 제품을 확정해서 가질 수 없고, 확률에 따라 무작위로 상품을 얻게 되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단순한 어린이용 장난감에 그치지 않고 인기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독특한 미니어처 소품 등 성인 수집가(키덜트)를 겨냥한 고품질 피규어 제품이 많이 등장하면서 인기는 급속하게 확대됐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가챠뽑기방이 키오스크(동전 교환기)만 비치한 채 24시간 무인으로 운영할 수 있어서 출점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니 민음사 빵은 ‘랜덤하게 나오는 희소성의 물품을 오프라인에서 손에 넣는’ 기쁨을 추구하는 소비자 심리와 시대의 흐름을 잘 버무려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지 않을까 한다. 바로 출판사들이 보여주는 ‘문화 브랜드’로의 전환 모습이다. 그래서 이 열풍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곳은 편의점이 아니라 민음사의 행보라 할 수 있다.

민음사에게 이번 빵 협업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훨씬 큰 그림의 일부로 읽히는 측면이 있다. 민음사는 이미 유료 독서 커뮤니티인 ‘민음북클럽’을 운영하며 회원 수를 꾸준히 늘려왔고, 자체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도 수십만 구독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서울국제도서전 부스 운영, 캐릭터 협업 굿즈, 아이파크몰 팝업스토어까지 더해지면서, 민음사는 책을 파는 출판사에서 콘텐츠와 경험을 파는 문화 브랜드로 조금씩 자리를 옮기고 있다. 

이번 빵 열풍은 그 전환 과정에서 나온 상징적인 사건에 가깝다고 본다. 책은 이제 서점 매대뿐 아니라 유튜브, 북클럽, 도서전, 그리고 편의점 냉장 진열대에도 함께 놓여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은 다른 출판사들에도 자극이 되고 있다.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지성사 등 이른바 4대 문학출판사로 불리는 곳들도 각자 시인선과 세계문학 시리즈를 통해 오랫동안 팬층을 쌓아왔는데, 민음사 빵의 흥행은 이들에게 굿즈와 이종 산업 협업이 더 이상 유행에 편승하는 곁가지 사업이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와 신규 독자 유입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유효한 전략임을 보여준 셈이다. 실제로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여러 출판사가 티셔츠, 에코백, 키링, 책갈피, 키캡 등 다양한 굿즈를 선보이며 이미 비슷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편의점 업계 역시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다. GS25뿐 아니라 CU, 세븐일레븐 등 주요 편의점들은 최근 몇 년간 베이커리 라인업을 강화하며 유명 브랜드나 화제성 있는 콘텐츠와의 협업을 늘려왔다. CU는 지역 명물 빵집과 손잡고, 세븐일레븐은 SNS에서 화제가 된 디저트를 발 빠르게 상품화하며 디저트 매출을 매년 두 자릿수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문학’이라는, 그동안 편의점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영역과의 협업이 오히려 신선한 차별화 포인트로 통했고, 그 결과가 민음사 빵이라는 초대형 히트로 이어진 것이다. 경기 둔화와 점포 포화로 경쟁이 치열해진 편의점 업계 입장에서, 이종 산업과의 이색 협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열풍의 공급자인 민음사와 편의점의 전략은 과연 수요자인 소비자의 어떤 마음을 자극했던 것일까? 민음사 빵 현상을 소비자 심리 측면에서 들여다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이 보인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작은 사치(스몰 럭셔리)’이다. 고물가와 경기 둔화로 큰 지출을 망설이게 되는 시기일수록, 사람들은 3,000~4,000원짜리 빵처럼 부담 없는 가격으로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소비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문학 작품’이라는 취향적 요소가 더해지면서, 이 작은 소비는 단순한 간식 구매를 넘어 자기 취향을 확인하고 표현하는 행위가 되었다.

둘째는 앞서도 언급한 ‘컬렉팅 심리와 불확실성이 주는 재미’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는 점은 소비자에게 약간의 스릴을 제공한다. 완결된 세트를 모으고 싶은 욕구, 즉 인간의 수집 본능은 이미 스티커, 피규어, 카드 게임 등 여러 산업에서 검증된 강력한 소비 동인이다. 여기에 ‘세계문학전집’이라는, 한때 집집마다 책장에 꽂혀 있던 향수 어린 상징이 결합하면서, 단순한 뽑기를 넘어 “어릴 적 꿈이었던 세계문학전집을 모으고 있다!”라는 정서적 만족감까지 더해지면 열풍이 증폭되었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오프라인 경험에 대한 갈증’이다. 온라인 쇼핑과 배달 앱이 일상이 된 시대에, 직접 발품을 팔아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고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는 경험은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진다. 클릭 몇 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환경일수록, 노력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의 가치는 역설적으로 커진다. 민음사 빵을 구하러 다니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놀이이자 소셜미디어에 공유할 만한 콘텐츠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넷째는 ‘정체성 소비’를 들 수 있다. 텍스트힙 흐름 안에서 책을 읽거나 문학 굿즈를 소비하는 행위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나는 이런 감성과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 됐다. 민음사 빵을 구매하고 인증하는 행위 역시 실제로 책을 완독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문학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SNS상에서 표현하려는 욕구와 맞닿아 있는 셈이다.


민음사 빵이 열풍이라는 소식을 듣고 빵을 사보려고 몇 번이나 가까운 편의점을 방문해 시도를 해보았지만 실패였다. 하루는 우리동네GS에서 재고찾기를 해보니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재고 한 개가 있다고 뛰어갔는데, 편의점에 도착하기 1분 전에 ‘1’이라는 재고 표시가 ‘0’으로 바뀌는 바람에 허탈하게 돌아선 적도 있었다. 책을 좋아하고, 트렌드에 민감하고, 수집에 관심이 있는 입장에서는 좀더 땀과 눈물을 흘려야 영접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더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열풍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도 든다. ‘과연 이 열풍은 얼마나 갈까?’라는.

민음사 빵 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이번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사람들이 정말로 긴 글과 문학에서 완전히 멀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도서전에 십만 명 넘는 인파가 몰리고, 출판사 유튜브와 북클럽에 수만 명이 모이는 현상은, 활자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그 갈증이 이제는 서점이라는 전통적인 공간을 넘어, 편의점 진열대나 SNS 피드처럼 훨씬 일상적이고 가벼운 접점을 통해 해소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례는 ‘콘텐츠 자체의 힘만큼이나, 그 콘텐츠를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느냐’가 브랜드의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을 출판업계에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책을 너무나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앞으로 또 어떤 출판사가, 어떤 예상 밖의 조합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계속 지켜볼 만한 흐름이지 않을까 한다.


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