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좋아한다. 한때는 화가가 되고 싶었기도 했었고, 미술 관련 책이나 영상, 콘텐츠도 즐기고, 해외여행도 가장 먼저 계획에 그 지역 미술관을 넣을 만큼 미술관을 좋아한다. 경제적 여유가 안 되니 비싼 그림은 사지 못했지만, 그래도 소품들은 꽤 가지고 있는 편이다.
지난 주말, 원주의 미술관에 다녀온 것은 딸의 추천이기도 했고,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그래도 대형 전시회가 있다고 해서였다. 서울에서는 조금 먼 곳이고 다소 입장료가 부담스러운 곳이기는 하지만 초여름 자연의 품을 즐길 수 있으니 겸사겸사 나쁘지 않을 듯했다.
미술관을 한 바퀴 다 돌고 카페의 바깥 자리에 앉아 산을 바라보면서 음료를 마시고 있는데, 딸이 급하게 아이스커피가 담긴 유리잔을 들고 초록이 상큼하게 피어난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무언가의 작업을 한다.
친구들과 SNS를 하나보다 하고는 한번 보여달라고 하니 요즘 유행하는 셋로그(setlog)라는 것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 앞뒤에 앉아있는 젊은 무리들도 모두 셋로그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1시 정각이 되어서 모두 하는 것 같다면서.
작가가 남긴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즐기고 나왔더니 사방은 지금이라는 시간을 즐기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유행한다는 셋로그, 도대체 무엇일까?
셋로그는 친구들과 그룹 방을 만들고, 1시간마다 울리는 알림에 맞춰 2~4초 분량의 짧은 일상 영상을 촬영하여 자동으로 하나의 분할 브이로그를 완성해 주는 젊은 세대의 인기 소셜 미디어 앱을 말한다.
iOS로 먼저 출시되었고, 안드로이드 용으로는 2026년 4월 23일에 출시되었는데, 꾸미거나 거창한 편집 없이 출근길, 공부, 취미 등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며 소통하는 날 것의 일상 공유가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디지털 소통이 일상이 된 시대인 지금, 친구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방법은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양새다.
디지털 소통 시대의 메시지는 너무 빠르고, 피드는 너무 복잡하며, 관계는 언제나 바쁘다. 이 가운데 최근 주목받는 셋로그는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새로운 소통 감각을 제안한다.
정교하게 편집된 콘텐츠보다, 함께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감각을 남기는 것이다. 셋로그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 SNS와 구별된다. 화려한 자기표현보다 일상의 동시성을 기록하고, 보여주기보다 공유하는 방식에 가깝다.
셋로그가 흥미로운 이유는 기능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용자는 매시간 또는 일정한 간격에 맞춰 짧은 영상을 찍고, 그 조각들을 이어 하루의 흐름을 남긴다. 별도의 긴 편집이나 과도한 연출이 필요하지 않다.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을 누군가와 동시에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이 단순한 구조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끈다. 기록의 부담은 줄고, 관계의 감각은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셋로그가 기존 소통 방식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소통의 부담을 낮췄다는 데 있다. 문자메시지, 댓글, 영상통화, DM은 모두 어느 정도의 응답을 전제로 한다.
보낸 사람은 반응을 기대하고, 받는 사람은 적절한 답을 고민한다. 이 과정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동시에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오히려 “어떤 말로 답해야 할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셋로그는 이 구조를 바꾼다. 꼭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오늘도 각자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흔적은 남길 수 있다.
이 점에서 셋로그는 대화형 소통이라기보다 ‘기척’을 나누는 방식에 가깝다. 무언가를 직접 묻고 답하지 않아도, 상대의 하루를 짧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관계는 유지된다. 사람들은 이 가벼운 접촉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차이는 소통의 중심이 ‘메시지’에서 ‘동시성’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기존 SNS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를 다녀왔는지를 보여주는 데 익숙했지만, 셋로그는 그보다 “지금 이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주목한다. 정보보다 리듬이 앞서는 것이다.
이 변화는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를 만든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관계에서 시간의 감각을 나누는 관계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젊은 세대가 왜 셋로그에 끌리는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결국, 셋로그가 빠르게 인기를 끌고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현대인의 심리적 피로가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늘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자주 지친다. 언제든 응답할 수 있어야 하고, 언제든 보여줄 수 있어야 하며, 언제든 비교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 이런 조건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더 가볍고 덜 소모적인 소통 방식을 찾는다. 셋로그는 바로 그 욕구를 정교하게 건드린다.
소통이 많아질수록 관계가 깊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응해야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피곤함도 커진다. 셋로그는 관계의 피로감을 해소하는 데에 최적이다. 짧은 기록만으로 참여할 수 있으니 감정적 부담이 낮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적다는 것은, 바쁜 일상 속에서 매우 큰 장점이다.
유행의 배경에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외로움의 완화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완전히 혼자라는 감각에 오래 머물기 어렵다.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누군가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인식은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셋로그의 알림과 반복되는 기록은 이런 안정감을 작게나마 제공한다. 눈에 띄는 대화는 없어도, 누군가가 지금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표현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도 유행의 배경이 되었다. 예전에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일, 나아가 멋지게 잘 꾸며서 보여주는 것이 자기표현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너무 완벽한 자기표현은 오히려 피로와 거리감을 만든다. 셋로그에서 중요한 것은 멋짐이 아니라 진짜 일상이다. 흐트러진 머리, 대충 찍은 책상, 하품이 섞인 표정 같은 장면이 오히려 더 솔직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그 솔직함에서 안도한다.
셋로그는 위와 같은 이유로 인기를 얻고 트렌드가 되긴 했지만 명확한 단점도 있다. 일단 1시간 간격으로 영상을 올리는 것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이 되면 울리는 알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모든 친구가 다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장기적으로 그룹이 유지될 가능성도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현재 셋로그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는 이유는 동시성이라는 감각을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하루는 점점 분절된다. 출근 시간도 다르고, 식사 시간도 다르며, 하루를 마감하는 시점도 제각각이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아도 실제 생활의 리듬은 어긋나 있기 쉽다. 이때 셋로그처럼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구조는 관계의 리듬을 다시 맞추는 역할을 한다.
동시성은 인간관계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다. 반드시 같은 공간에 있어야만 친밀한 것은 아니다. 같은 순간에 비슷한 감각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은 연결을 느낀다.
셋로그는 이 감각을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구현한다. 매번 긴 대화를 하지 않아도, 같은 시간에 찍은 짧은 영상이 모이면 하루 전체가 하나의 공동 경험처럼 느껴진다.
이 점에서 셋로그는 새로운 형태의 느슨한 공동체를 상징한다. 과거의 공동체가 함께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면, 지금의 공동체는 같은 리듬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느슨한 연결로 옮겨가고 있다.
셋로그는 이 변화의 한복판에 있다. 서로를 매일 붙들지 않아도, 같은 시간에 하루를 남기는 사람들 사이에는 충분히 관계가 생긴다.
오늘날의 SNS 문화는 점차 과시에서 감각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때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멋진 곳에 있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방식은 피로를 낳았다.
보는 사람은 비교에 지치고, 올리는 사람은 꾸준히 좋은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결국, SNS는 관계를 연결하는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감정 소모의 장소가 되었다.
셋로그는 이 흐름을 다르게 바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들에게 잘 보이는 삶이 아니라, 나의 하루를 어떤 감도로 남기느냐이다.
화려한 장면보다 생활의 질감이 더 중요하고, 완성된 결과보다 지나가는 과정이 더 가치 있게 읽힌다. 이는 단순한 미감의 변화가 아니라 관계의 윤리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더 잘 보여주기보다 더 덜 지치면서 서로를 확인하는 방식이 존중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특히 Z세대와 젊은 직장인층에서 두드러진다. 이들은 디지털 도구에 익숙하지만, 동시에 디지털 피로도 강하게 느낀다. 항상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늘 혼자인 듯한 감각, 늘 보이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해받지 못하는 감각을 자주 경험한다.
셋로그는 이 모순된 심리에 맞닿아 있다. 이 플랫폼은 거창한 존재 증명을 요구하지 않고, 아주 작고 일상적인 흔적만으로 연결을 유지하게 해준다.
사회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셋로그는 몇 가지 중요한 욕구를 동시에 충족한다. 첫째는 소속 욕구다. 사람은 집단 안에 속해 있다는 감각을 통해 안정감을 얻는다. 셋로그는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적더라도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소속감을 형성한다.
둘째는 인정 욕구다. 다만 셋로그에서의 인정은 거창한 칭찬이나 비교의 결과가 아니다. 누군가가 내 하루의 작은 조각을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인정이 된다. 잘난 모습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습이 주목받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구조는 자기검열을 줄이고, 관계에 대한 부담을 완화한다.
셋째는 통제감이다. 현대인은 많은 영역에서 예측 불가능함을 경험한다. 일, 인간관계, 사회 분위기 모두 늘 빠르게 바뀐다. 하지만 셋로그는 아주 작은 단위의 루틴을 제공한다. 정해진 시간에 찍고, 남기고, 돌아보는 과정은 하루를 정리하는 감각을 준다. 반복 가능한 작은 습관은 삶 전체의 불안감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넷째는 자기서사 욕구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어떤 하루를 살아왔는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셋로그는 그 서사를 거창한 이야기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하루 조각들을 모아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는 감각을 조용히 축적한다. 이 방식은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부담을 줄이면서도, 삶의 흐름을 놓치지 않게 해준다.
셋로그가 널리 확산된 또 하나의 이유는 일상에 대한 태도 변화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기록할 만한 일과 기록할 가치가 없는 일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었다.
여행, 기념일, 성취는 기록할 만한 것이고, 출근, 식사, 대기, 퇴근은 그냥 지나가는 시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 사소한 시간 속에 자신의 삶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셋로그는 이런 감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무엇을 해냈는가보다 오늘을 어떻게 지나왔는가가 중요해진다. 기록은 ‘성공의 증거’가 아니라 ‘존재의 흔적’이 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를 넘어선다. 삶을 성과 중심으로만 바라보지 않겠다는 작은 선언이기도 하다. 일상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주인공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셋로그는 현대인의 삶을 조용히 재해석한다. 우리는 늘 대단한 장면만이 삶의 가치라고 배워 왔지만, 실제로 마음에 남는 것은 대개 별일 없던 시간들이다. 따뜻한 빛이 들어오던 오후, 아무 말 없이 걷던 길, 피곤했지만 웃었던 순간 같은 것들이다. 셋로그는 이런 장면들을 다시 꺼내어, 평범함이야말로 가장 오래 남는 기록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셋로그는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새로운 소통 문법의 출현을 보여준다. 이 문법은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가벼움이다. 둘째는 동시성이다. 셋째는 진정성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작동할 때 더 강한 친밀감을 만든다.
가벼움은 참여를 쉽게 만들고, 동시성은 관계를 느끼게 하며, 진정성은 그 관계를 오래가게 한다. 셋로그는 이 구조를 아주 적은 장치로 구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에는 신기함으로 접근하지만, 점차 습관처럼 사용하게 된다. 큰 결심 없이도 이어지는 관계, 설명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관계, 부담 없이 확인되는 관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셋로그가 모든 소통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깊은 대화, 정서적 지지, 갈등 조정은 여전히 별도의 언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셋로그는 그 이전 단계, 즉 관계를 잊지 않게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관계가 끊기지 않고, 무거운 메시지를 주고받지 않아도 서로의 하루를 놓치지 않는 방식. 이것이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관계의 형태일 수 있다.
셋로그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관계를 이어가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화려한 말, 완벽한 이미지, 긴 설명이 아니라면, 어쩌면 우리는 아주 작고 조용한 장면들로도 충분히 서로를 기억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선 것인지 모른다.
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