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아침부터 딸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평소 같으면 늦잠으로 시작하는 휴일의 오전을, 어찌 된 일인지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단장하고 뭔가 부산스럽게 시작했다.
아하, 오늘이 그 5km 단축 마라톤인가를 하는 날이라고 했지.
5km라는 거리를 뛰는 것도 마라톤의 범주에 들어가는지도 의아하긴 했지만, 더 의아한 건 평소에 운동과는 거리를 두고 있던 딸이 갑자기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42.195km라는 오해는 곧 풀렸지만.
방에서 스트레칭 이외에는 운동과 담을 쌓고 있던 몸을 걱정해서 5km라도 힘들지 않겠냐고 물어보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힘들 거 없어. 남자친구랑 같이 뛸 거고, 뛰기 어려우면 그냥 천천히 걸어도 돼. 다른 사람들도 큰 부담없이 그냥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자고 참가하는 건데 뭐. 그리고 끝나고 맛있는 삼겹살 먹기로 했거든.”
황영조, 이봉주 선수가 그 긴 거리를 고독하게 싸우면서 완주를 해내던 모습을 TV 화면으로 보았던 세대에게는 참으로 신선한 대답이다.
‘나와의 외로운 싸움’의 대명사였던 마라톤의 성격도 세월만큼이나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읽은 ‘사우나런(sauna run)’과 관련된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한 아웃도어 편집숍이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모두 8차례, 함께 달린 후 텐트 사우나에서 땀을 내는 모임을 개최했는데 총 114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제 누군가 마라톤이나 달리기를 한다는 건 승부를 보는 스포츠에서 출발해서, 건강관리나 체력단련을 거쳐, 친목과 데이트의 영역으로 진출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바야흐로 마라톤과 달리기의 사회적, 심리적 의미가 만개하는 시기가 되었다.

지난 3월 28일 경남 밀양시 밀양 강변에서는 5km 벚꽃길을 뛰면서 음식을 맛보는 ‘나이트 런 앤 워크 인 밀양’마라톤 행사가 있었다. 1km마다 놓인 음료수는 ‘땡초 물회국수’, ‘불짜장밥’과 같은 특별메뉴인데, 가족과 함께 한 참가자들은 기록이 아닌 추억을 남기느라 바빴다.
같은 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서울 유아차런’에 참가하기 위한 유모차(유아차) 4,000여 대가 모이기도 했다. 유모차를 밀고 8km를 달리는 행사인데, 서울 한복판을 언제 이렇게 걸어보겠느냐며 가족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같은 날 서울 구로구에서는 안양천 벚꽃길을 따라 5km를 완주하고 수육과 두부김치, 막걸리를 무한으로 먹을 수 있는 ‘수육런’행사가 열렸다. 동네 잔치 같은 분위기에 멀리서 온 참가자들도 많았다.
이 밖에 경남 합천이 지역소멸 위기 극복을 위해 개최하는 ‘합천벚꽃마라톤대회’, 경북 의성군이 산수유 축제 기간에 개최하는 ‘의성마늘마라톤’, 경북 영주의 ‘소백산마라톤대회’를 비롯해서 ‘경주벚꽃마라톤’, ‘군산새만금마라톤’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지역 마라톤 대회도 우후죽순처럼 열리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특산품도 홍보하고 관광객을 늘리는 데에 러닝만 한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 마라톤 참가자를 대상으로 전세 버스를 전문적으로 운행하는 상품도 등장했다고 한다.
이렇게 전국으로 번져가는 마라톤 축제는 홀로 달리기를 즐기려는 개인 참가자는 물론이겠지만, 그보다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 또는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른 아침 한강 공원.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시간인데도, 이미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각자의 속도는 다르지만, 비슷한 리듬으로 발을 맞춘다. 누군가는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는 침묵 속에서 호흡을 공유한다. 이런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달리기는 개인의 고독한 운동에서 벗어나 하나의 사회적 활동으로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달리기는 오랫동안 철저히 개인적인 행위로 인식되어 왔다.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체중을 줄이기 위해, 혹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혼자 이어폰을 꽂고 달리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달리는 동안 타인과의 관계는 최소화되었고, 오히려 혼자라는 상태가 중요한 전제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의 풍경은 분명 다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혼자 잘 달리는 것’보다 ‘함께 달리는 경험’을 선택하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러닝 크루’라는 현상이 있다. 특정 브랜드나 조직이 아닌,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함께 달리는 이 집단은 단순한 운동모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러닝 크루는 느슨하지만 분명한 소속감을 제공하고, 운동이라는 행위를 매개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장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단순히 달리기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감정과 정체성까지 함께 나눈다는 데 있다.

그럼 왜 사람들은 달리기를 통해 다시 ‘함께’를 선택하고 정체성을 공유할까.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공유된 경험(shared experience)’이 주는 정서적 보상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목표를 향해 몸을 움직이는 경험은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특히 달리기처럼 일정한 리듬과 반복을 요구하는 활동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같은 페이스로 달리고, 같은 순간에 숨이 차오르며, 비슷한 지점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경험은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감각을 만들어준다.
스포츠 심리학과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동기화(Synchrony)’라고 부른다. 동기화의 힘도 러닝 크루 열풍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 행진하는 군인들이나 합창단, 그리고 함께 달리는 러닝 크루들은 같은 리듬을 공유하면서 심장박동이 비슷한 속도로 뛰고, 발걸음의 박자가 맞춰질 때 인간의 뇌는 옥시토신과 엔도르핀을 강력하게 분비한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우리가 ‘하나’라고 느끼게 만드는 장치다.
이때 중요한 것은 경쟁이 아니라 시간의 공유가 목적이라는 점이다. 과거의 스포츠가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을 중심으로 했다면, 지금의 러닝 크루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둔다.
기록을 겨루기보다 완주를 함께 축하하고, 속도를 맞추기보다 서로의 리듬을 존중한다. 이는 성취 중심에서 경험 중심으로 이동한 현대인의 가치관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러닝 크루는 현대 도시인의 ‘느슨한 공동체’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다.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는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을 이야기했다. 끈끈하고 깊은 관계는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느슨하고 가벼운 관계는 우리에게 새로운 정보와 뜻밖의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러닝 크루가 폭발적으로 유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통적인 공동체가 약화된 이후, 사람들은 강한 책임이나 의무 없이도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를 찾기 시작했다. 러닝 크루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이상적인 형태다.
참여와 이탈이 자유롭고, 관계의 깊이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공통의 활동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색함 없이 관계가 시작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각 지역에서 열리는 단축 마라톤 행사 역시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축제’로 기능하고 있다. 5km, 10km와 같은 비교적 짧은 거리의 대회는 진입 장벽을 낮추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경험을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기록보다 ‘그날의 분위기’를 기억하고, 완주 후의 사진과 이야기를 공유하며 그 경험을 확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달리기’가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된다는 것이다. 러닝은 이제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기록 가능한 경험이자 공유 가능한 이야기로 재구성된다.
SNS에는 러닝 크루의 단체 사진, 완주 메달, 새벽 공기의 감각까지 다양한 형태의 러닝 경험이 축적된다. 이는 개인의 일상이 타인과 연결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된다.
이 현상은 ‘건강’에 대한 인식 변화와도 연결된다. 과거에는 건강이 개인의 관리 영역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타인과 함께 만들어가는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
함께 달리는 것은 단순히 운동의 지속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지지를 동시에 제공한다. 즉, 러닝 크루는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복합적인 플랫폼이 된다.
또한, 러닝 크루는 현대인의 ‘정체성 실험’의 공간이기도 하다. 직장이나 가족이라는 고정된 역할에서 벗어나, ‘러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선택하고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체성은 비교적 가볍지만, 동시에 충분히 의미 있다. 특정 브랜드의 러닝화를 신고, 크루의 티셔츠를 입고, 정해진 시간에 모여 함께 달리는 행위는 일종의 의식처럼 반복되며 개인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여기에는 ‘속도의 정치학’도 숨어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빨라져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러나 러닝 크루에서의 속도는 다소 다르게 작동한다. 물론 여전히 기록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함께 가는 것’이다. 이는 경쟁 중심 사회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방식의 시간을 경험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결국, 함께 달린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타인과의 거리를 조율하는 방식이며,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다. 완전히 고립되지 않으면서도 과도하게 얽히지 않는, 현대인이 선호하는 관계의 형태가 그 안에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오늘도 누군가는 이어폰을 빼고 달리기 시작한다. 혼자만의 리듬 대신, 타인의 호흡에 귀를 기울이며. 그리고 그 순간, 달리기는 더 이상 외로운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함께 만들어가는 경험이자,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작은 공동체의 움직임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달릴 것인가’보다 ‘누구와 달릴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리라 생각된다.
_ 이완정_『외로움을 소비하는 사회』 저자/(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