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Insight_10] 운명과 알고리즘의 시대, 나는 누구인가를 묻다
3월 초, 신점, 사주, 타로, 관상 등의 운명술사들이 모여 여러 미션을 거쳐 운명을 가장 잘 읽어낸 최후의 1인을 뽑는 OTT의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다. 출연자들과 관련된 문제가 이어지기도 했지만, 운명과 점술이라는 대중적 호기심을 서바이벌 구조와 결합해 몰입감과 긴장감을 극대화하면서 시청자의 흥미를 자극하면서 흥행에서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21세기의 오늘은 가장 과학기술이 발달한 세상이다. 종교의 영향력도 약해진 덕분인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싶다면 자신의 DNA를 분석해보는 편이 가장 빠를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이런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현대인은 아주 아주 오래전, 인간이 샤먼이라는 존재를 통해 하늘과 소통하고, 하늘을 뜻을 이해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운명과 사회의 안위를 점쳤던 시절의 심리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닐까’라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운명과 점술의 연결성이 대중에게 화제가 되는 까닭도 짐작이 간다.
주식시장의 지수를 보면 급등과 급락을 번갈아 오고 가는 세상이다.
분명 어제까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건만, 한참이나 떨어진 나라에서 터진 전쟁으로 한순간 바닥을 친다.
자연재해가 더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어떤 지역에서는 화산이 터지고, 지진이 나고, 태풍이 덮쳐오고, 폭우로 집과 도로와 생명이 쓸려가기도 한다.
예기치 못한 테러도 사망자가 나오고, 총기 사고로 학생과 선생님이 죽기도 한다.
우리 주변은 또 어떤가. 사건사고는 뉴스 시간을 다 채울만큼 빈번하게 일어난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꿈꾸지만 그저 바람일 뿐이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은 내가 아무리 대비하고 예상한다고 해서 그대로 내 앞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도대체 내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거야?’라는 예측 가능성이 50%를 넘을까 말까한 세상인 셈이다.
이런 세상이라면 당연히 운명을 알고 싶다. 모두가 그렇다. 그러니 ‘운명 탐구의 대중화’는 어쩌면 당연한 트렌드가 되어 버렸다.
여기에 하나 더 요인이 가세한다.
바로 ‘자기 이해의 욕망’이 그 어느 시대와 사회보다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제 자신의 MBTI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시대이다. 물론 MBTI에서 말하는 T나 J가 어떤 의미인지도 상식적으로 알아야 한다.
TV 예능에서도 초면의 연예인들이 만나면 인사말로 MBTI가 뭐냐고 물어보는 시대이다.
그런데 여기에 타로가, 사주가, 신점이 덧붙여졌다.
누군가 내 손목을 잡고 말한다.
“요즘엔 MBTI보다 사주가 더 정확하대.”
나는 웃지만, 그 말이 어쩐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MBTI, 타로, 혈액형, 별자리, 사주…
이름은 달라도, 결국 모두 ‘나를 알기 위한 지도’들이다.
사람들은 그 지도를 끊임없이 들여다본다. 오래전에는 점집 골목 입구의 촛불 아래서 물었고, 지금은 알고리즘이 추천한 유튜브 타로 리딩을 보며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의 나는 어떤 길을 걸을까?”

* AI 생성 image
코로나 이후 세상의 속도는 느려졌지만, 인간이 느끼는 불안의 속도는 더 빨라진 듯하다.
구조조정 뉴스, 부동산 하락, 기술 일자리의 재편, 일자리를 AI가 대체할 것이라는 불안 등등.
우리의 경제적 안정감은 모래 위에 그린 선처럼 쉽게 무너진다.
신체적 안정감은 또 어떤가. 크게는 핵무기로 위협하는 전쟁의 불안에서 시작해서, 지나가다 눈이 마주친 모르는 사람에게 쳐맞을 수도 있는 불안이 상존한다.
심리적인 안정감과 관계적인 안정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외로움과 우울감은 이미 사회가 관리해야 하는 품목이 되었다.
이렇게 상시 우리는 머리 위에 불안이라는 물풍선을 이고 다니고 있다. 언제라도 쉽게 톡 하고 건드리면 터지고 마는.
그러니 이런 불안 속에서 우리는 통제 가능한 무언가를 원한다.
그리고 ‘나의 운명, 너의 운명, 세상의 운명을 안다는 기분’은 그중의 하나가 되었다.
사주나 MBTI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불확실한 세상을 이해 가능한 구조로 압축시키는 프레임을 주기 때문이다.
모호한 미래를 하나의 서사로 재정렬해 주는 것, 그것이 현대인이 찾는 위안이다.
예컨대, “나는 INFJ라서 이런 감정이야”라고 말하면 복잡한 불안을 정리된 문장으로 번역할 수 있다.
”올해는 재물운이 약하다”라고 들으면 막연한 불운이 구조화된다.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인간은 언어를 통해 혼란을 줄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언어가 과학적이든 신화적이든, 중요한 건 정서적 설득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불확실성의 시대에 운명의 언어가 다시 돌아온 셈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과거의 은밀한 신앙이 이제는 대중의 오락으로 변한 점을 들 수 있다.
OTT에 등장한 무속 서바이벌은 바로 이런 문화 변화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신내림, 굿, 염주, 신단 같은 이미지가 화려한 연출 속에서 재구성되며, 젊은 세대는 그것을 낯설지 않게 소비한다.
이런 ‘무속의 대중적 소비’에 영향을 미친 것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일부 매니어층에서만 주로 소비되었던 소위 ‘오컬트 영화’가 이제는 다크 판타지, 초자연 스릴러라는 이름으로 확대되면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곡성’ ‘검은 사제들’ ‘사바하’ 그리고 ‘파묘’로 이어지는 오컬트 영화는 흥행면에서 크게 성공하면서 이제는 당당히 메인 장르로 자리잡았다.
오컬트 영화나 드라마에게 최적의 매체인 OTT는 안방에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를 통해 서양의 전통적인 악마 퇴마 소재부터 동양의 무속신앙, 풍수지리를 다룬 작품까지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의 오컬트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시대이다.
이런 오컬트 영화의 인기에 대해 ‘콘텐츠 다양화’나 ‘문화 호기심’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좀 더 깊게 보면 집단적 불안의 해소 방식이 엔터테인먼트화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선택의 책임을, 누군가 대신 내려주는 ‘신의 목소리’에 위탁하는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 오락적 무속이 일상적 언어로 번역되어 다시 돌아온다는 점이다. “그건 네 기운이 막혔어.”
“요즘 나도 신 받았나 봐.”
이런 표현들은 반쯤은 장난 같고, 반쯤은 진심이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은유적 통제 환상(metaphoric control illusion)’으로, ‘내 삶을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설명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방어적으로 작동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현대판 사주라고 불러도 무방한 MBTI의 유행도 사실 은유적 통제 환상과 맥락을 같이 한다. 다만 ‘점술서’를 읽던 사람들이 이제 ‘심리 분석 리포트’를 보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나에 대해, 내 운명에 대해, 내 삶에 대해 누군가 혹은 무언가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MBTI에 투영된 것일 뿐이다.
MBTI의 해석은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MBTI는 즉각적인 해설을 덧붙여준다.
“난 T형이라 감정적인 말 못 해.”
“INFP는 답장 늦는 거 기본.”
이런 말은 자기 성격에 대한 해석이자, 동시에 관계의 방어막이 된다.
‘나’를 분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를 정당화하는 프레임’으로 쓰이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정체성 내러티브(self-narrative) 의 한 형태다.
즉, 불완전한 나를 하나의 서사적 설명으로 엮을 수 있을 때, 사람은 안심한다.
그리고 MBTI는 정확히 그 자리를 차지했다. 데이터적 언어(심리검사 결과)와 신화적 욕망(운명 탐구)이 절묘하게 만나는 지점. 이 데이터화된 운명이야말로 21세기형 ‘현대 점성술’이라 부를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이제 무속도 ‘취향’의 언어로 소비된다는 것이다.
“나는 타로 좋아하지만 사주는 믿지 않아.”
“저 신점 유튜버는 감이 좋더라.”
이 문장은 신앙이라기보다 팬덤의 언어에 가깝다.
즉, 믿음’이 아니라 선호의 방식으로 운명이 다루어진다.
사회문화학자들은 이를 신앙의 세속화(entertainment secularization) 라고 부른다. 종교적 패턴이 감성적 놀이로 해체되고, 사람들이 신을 믿기보다 콘텐츠로 향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오늘날의 ‘무속 예능 서바이벌’은 아이돌 리얼리티와 구조적으로 닮았다. 출연자 간의 긴장, 서열, 각본, 심지어 승천이나 탈락 같은 개념까지.
운명은 이제 이야기 구조의 일부다.
무속이든 MBTI이든, 아니면 AI의 분석이든 결국은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게 될까?’는 묻는 욕망이 기저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그 중심에는 외로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타인에게서, 혹은 신에게서 자신을 이해받고 싶어 한다.
바로 그 이유로 MBTI를 공유하고, 사주를 함께 보고, 타로를 뽑는 건 아닐까.
그것은 마치 공감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너는 이런 사람이구나.”
“그래서 힘들었구나.”
내가 운명과 알고리즘의 시대에서 듣고 싶은 건, 이 말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현대의 운명론은 새삼스러울 만큼 인간적이다.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누군가의 언어로 다정히 해석되길 원한다.
신의 말이든, 알고리즘의 말이든, 그것이 내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다면 말이다.
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