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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7] 깨어있는 즐거움에 취하다, 소버 큐리어스

  •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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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7] 깨어있는 즐거움에 취하다, 소버 큐리어스


서울 연남동의 한 세련된 바(Bar). 어두운 조명 아래 바텐더가 화려한 손놀림으로 칵테일을 제조한다. 하지만 이 잔에 담긴 것은 위스키나 진이 아니다. 증류주의 풍미를 그대로 구현한 논알코올 스피릿과 천연 허브 추출물이다. 이곳을 가득 채운 2030 세대들은 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도 밤새도록 깊은 대화를 나눈다. 

중장년층에게는 약간 낯설게 보이는 모습이지만, 요즘 확산되고 있는 이런 음주 트렌드를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라 부른다고 한다.

술에 취하지 않는다는 뜻의 ‘소버(Sober)’와 궁금함을 의미하는 ‘큐리어스(Curious)’를 합친 표현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삶에 호기심을 갖는’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지 않고 산다면 과연 어떨까?”라는 강한 호기심으로 스스로 깨어있는 삶(sober life)를 추구하는 트렌드로, 건강과 자기관리를 위해 의도적으로 음주를 줄이거나 금주를 하는 것이다.

과거 “부어라 마셔라”식의 폭음 문화가 젊음의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취하지 않는 상태’를 선택하는 것이 힙(hip)한 라이프스타일이 된 셈이다.

술기운 빠진 술 소비의 경향은 ①술을 마시는 소비량이 줄고, ②술의 도수도 낮아지고 있고, ③무알코올 주류의 판매가 증가하고 있는 통계만을 봐도 가늠할 수 있다. 

우선 15세 이상 1인당 국산 주류 소비량이 2015년을 기점으로 크게 줄었는데, 여기에는 특히 2030 세대의 소비량이 크게 줄어든 것이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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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 한국건강증진개발원, “2025 알코올 통계자료집”, 2025
* 이미지: Beer by Eskak from Noun Project 


두 번째로 같은 양의 술을 마시더라도 취하고 싶지 않다는 소비 패턴은 주류의 도수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능하면 낮은 도수의 술을 마시려고 하다 보니 우리나라 대표 주종인 소주의 도수에도 변화가 생겼다. 국내 대표 소주 중의 하나인 ‘처음처럼’의 도수는 20도에서 출발해서 16도까지 떨어졌는데, 향후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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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 각 매체의 기사


술을 마시는 분위기도 즐기며 술로 이어지는 관계를 끊어내지 않으면서도 술에 취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세 번째 방법이 준비되어 있다. 바로 무알코올 주류를 이용하는 것이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의 2024년 보고서 “K음료, Zero or More”에 따르면, 국내 무알코올·비알코올 시장규모는 2021년 200억 원에서 2025년 2,000억 원 규모로 10배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유로모니터의 2023년 “Non-alcoholic Beverages in South Korea: Market Analysis and Forecast 2022-2027” 보고서에서는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의 규모를 2014년 81억 원에서 2027년 946억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이네켄코리아가 2022년과 2025년에 실시한 무알코올 맥주 소비 조사 결과를 보아도 소버 큐리어스의 경향이 두드러졌음을 알 수 있다. 2022년 조사에서는 무알콜 맥주를 마시는 이유로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선택’과 ‘취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한 응답자가 각각 52.4%와 43.4%였으나, 2025년 조사에서는‘특별한 이유 없이’라고 답한 사람이 56.4%로 가장 많았다. 이는 무알코올 주류를 마시는 것이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오픈서베이의 “주로 소비 트렌드 리포트 2024” 조사에서, 무알코올 주류 음용 이유로 ‘건강(38.5%)’과 ‘취하지 않기 위해서(33.3%)’가 가장 많은 응답을 얻어 소버 큐리어스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다.

소버 큐리어스란 용어를 몰라도 주변의 2030 세대의 음주 문화의 변화는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통계'를 보면 20대의 일일 알코올 섭취량은 약 64.8g으로, 2023년(95.5g) 대비 무려 32% 이상 급감했다고 하는데, 이는 60대의 섭취량(66.8g)보다도 낮은 수치이다.

이런 숫자를 보고 있자면 80, 90년대 대학가의 상징이었던 신입생 환영회나 MT, 또는 회사 회식의 ‘억지로 권하는 술’은 옛말이 된 듯하다. 술은 모임의 분위기와 흥을 돋우는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할 수 있지만, 술에 대한 의미 해석이 달라졌다고 할까.

이제 술은 ‘존재하는 것으로도 충분’ 정도의 의미로, ‘취해야 제 맛’이라는 고유한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술은 어디까지나 모임의 구성요소이긴 하지만, 핵심 요소가 되지는 못하는 셈이다.

그럼 왜 2030 세대는 그토록 사랑받던 술잔을 내려놓게 맨정신을 택하게 것일까?

우선 2030 세대는 술에 취해 기억을 잃거나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것보다는 “내 몸의 주권은 나에게 있다”라는 ‘자기 통제권’이 더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요즘 건강 관리가 곧 즐거움이라고 느끼는 이른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에 대한 인식도 강하다. 여기엔 당장 내일 아침 운동을 위해, 혹은 맑은 정신으로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술을 거부하는 실용주의적 사고도 깔려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적 관계에서 술이라는 도구의 쓰임새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점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술은 오랫동안 ‘어색함을 깨는 도구(Icebreaker)’였지만, 2030 세대는 “과연 술의 힘을 빌려야만 친해질 수 있는 관계가 진짜인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맑은 정신으로 깊이 있는 취향을 공유하는 관계를 선호한다. 독서 모임, 러닝 크루, 위스키가 아닌 무알코올 칵테일을 즐기는 모임 등이 활성화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우리가 남이가!”식의 집단 음주 문화에서 벗어나 기호와 신념을 존중받고 싶어 하는 탈(脫)집단주의 심리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소버 큐리어스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성숙한 소비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이란 생각이 든다. 소비자들은 이제 물질적 풍요를 넘어 ‘정신적 명료함’이라는 고차원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취함’이 주는 일시적인 해방감보다는 ‘깨어있음’이 주는 일상의 충만함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가치관의 이동이 바로 음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제 술은 인간관계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에서 ‘선택 옵션’으로 변했다. 소버 큐리어스 트렌드가 어떻게 우리 사회의 소통 방식을 더욱 건강하고 다채롭게 바꾸어 놓을지, 깨어있는 정신으로 바라볼 지켜볼 일이다.


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