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Insight] 달콤한 성공 인증 트로피, 케이크 이야기
크리스마스가 자리한 연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케이크. 호텔이나 제과점 등에서는 일 년 중 가장 케이크 수요가 많은 시기에 앞다투어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미각을 만족시키는 케이트를 선보이고 있다. 2025년 연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라호텔이 하루 3개 한정으로 내놓은 ‘화이트 트러플 케이크’는 50만 원으로 케이크 최고가를 경신했고, 워커힐호텔은 38만 원, 웨스틴 조선호텔은 35만 원의 케이크를 선보이면서 호텔 케이크는 1년 사이에 10만 원 정도 가격이 올랐다. 이런 케이크들은 대관람차 형상이나 금박 장식 등 정교한 수작업으로 만들어져서 ‘예술품’을 구매하는 느낌을 줄 정도라 한다.
그런데 이런 고가의 케이크. 고물가, 경기 침체, 소비 위축 등으로 인해 소비자와 자영업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불황’이라 진단받고 있는 2025년 연말에 왜 이리 주목받고 잘 팔리고 있는 것일까?
케이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한 변화를 겪은 음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케이크는 태양과 달을 형상화한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었고,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설탕, 버터, 향신료와 같은 귀한 식재료가 더해지자 케이크는 왕실과 귀족의 부를 과시하는 도구로 변모했다.
케이크와 관련해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일 것이다. 이 말은 18세기 프랑스 혁명 당시 서민들의 굶주림을 무시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말이라고들 알고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이야기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9살 때 쓰인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에서 ‘한 지체 높은 공주’가 한 말이라면서 등장한 이야기이니 아마도 이전부터 존재했던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오해의 중심이 된 마리 앙투아네트와 브리오슈>

* 그림:‘마리앙투아네트와 장미’_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룅(1783)
* 사진: ‘Brioche’ from Wikimedia Commons
게다가 원래는 프랑스어로 “Qu'ils mangent de la brioche!”, 그러니까 “브리오슈를 먹게 하세요.”라는 표현이 영어로 “Let them eat cake”로 번역되어 이를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그냥 사용하고 있어 생긴 오해이다.
브리오슈(brioche)는 달걀과 버터를 넣어 맛을 돋운 고급 빵이기 때문에, 이 말은 권력층의 무관심과 서민의 고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되었는데, 그만큼 케이트 자체가 서민과는 거리가 있는 먹거리였다는 뜻이다.
특히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에서 선보인 거대한 ‘화이트 웨딩 케이크’는 순백의 정제 설탕이 얼마나 비싼지를 보여주는 부의 척도였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특별한 날의 케이크'라는 공식이 완성되었다. 즉, 케이크는 탄생의 순간부터 이미 맛 그 이상의 ‘계급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연말에 팔리는 예술품 수준의 케이크의 비싼 가격은 단순히 고급 식재료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분명 계급적 가치, 즉 ‘이걸 살 수 있는 나는 일반 소비자가 아니야. 난 나름 돈 좀 있는 사람이지’라는 자본주의의 계급적 우위성을 보여주는 데에 안성맞춤인 소비재일 것이다.
현대소비사회에서 경제적, 계급적 우위는 소비자가 단순히 자기 혼자 그렇게 느끼면서 만족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네트워크 시대의 소비자는 ‘이걸 살 수 있을 만큼 난 잘 살아왔으니 이 정도는 나에게 선물을 해도 괜찮아’라는 ‘셀프 보상’과 함께, ‘이 정도의 나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과시’의 욕구를 고가의 케이크를 통해 충족하고 있다.
그래서 SNS에 사진을 올려 이 고가의 케이크를 소비하는 모습을 자랑하고 인증하는 플랫폼 문화가 결합하면 그야말로 스몰 럭셔리(small luxury)의 정점을 찍게 된다.
식료품, 화장품, 생활용품과 같이 비교적 작고 소소한 제품을 고급스럽고 호화로운 것으로 구매하는 스몰 럭셔리는 2023년 우리 사회의 소비 키워드로 자리 잡은 이후 확대되어가는 추세이다. 큰 사치는 부릴 수 없어도, 작지만 고가의 소비재를 통해 만족감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이 연말 고가의 케이크 시장에 반영된 셈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순한 보상심리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SNS에 올라오는 케이크 사진을 보면 마치 “이걸 보라니까!. 나는 이런 케이크를 소비할 수 있을 만큼 성공했어!”라는, 마치 사람들에게 우승 프로피를 높이 들어 보여주는 챔피언의 의기양양함이 보이는 듯하다. 고가의 한정판 케이크가 소비사회의 승리자가 자신의 성공을 인증하는 트로피로써 말이다.

< 트로피형 케이크를 만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 AI생성 이미지
‘적을 이긴 표지’라는 뜻의 그리스어 ‘트로파이온(tropaion)’을 어원으로 하는 트로피(trophy)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전쟁 승리 후 적군에게서 빼앗은 무기, 투구, 방패 등을 전리품으로 나무에 걸어두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승리를 과시하고 적에게는 경고의 의미를 지녔던 트로피는 18세기 초 영국 앤 여왕 시대의 승마 대회 우승자에게 술을 따라 마실 수 있는 축배의 의미로 컵 모양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현대 소비사회에서의 성공을 의미하는 트로피는 반드시 컵 모양을 하고 있지는 않다. 반짝이는 반지, 네 바퀴의 자동차, 잘 빠진 양복, 금줄이 박힌 명함, 한정판 스니커, 고급 오마카세 코스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고가의 한정판 케이크도 새로운 트로피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뿐이다.
승리자는 자신이 승리했다는 것을 말로 하지 않아도 트로피를 손에 들고 보여줌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성공과 업적을 과시한다. 트로피를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도 이 트로피를 손에 넣고 싶다고 생각한다. 트로피는 가진 자와 원하는 자의 욕망의 매개물이다.
그러니 단순하게 ‘왜 그 비싼 케이크를 쓸데없이 소비하느냐?’라며 허영심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케이크가 담긴 SNS의 사진 한 장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올해도 잘 버텼다’라는 자신에 대한 위로와 함께, ‘게다가 나는 경쟁에서 승리한 존재’라는 트로피를 보여주는 것이니.
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