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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13] 빌딩 숲 사이, 12시의 오아시스_ 런치케이션

오전 11시 50분, 도심의 오피스 빌딩 숲.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낮게 깔린 회의실의 백색소음 사이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윽고 정오를 알리는 시계탑의 종소리, 혹은 컴퓨터 모니터 우측 하단의 숫자가 ‘12:00’으로 바뀌는 순간, 팽팽했던 공기는 일순간 이완된다. 사원증을 목에 건 사람들이 썰물처럼 빌딩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과거의 점심시간이 그저 텅 빈 위장을 채우고 서둘러 모니터 앞으로 복귀하는 주유소와 같은 시간이었다면, 최근 12시의 풍경은 사뭇 다른 색채를 띠고 있다.사람들은 더 이상 식사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이 허기를 느끼는 곳은 위장이 아니라, 어쩌면 소진되어 버린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최근 점심시간을 쪼개어 미술관의 고요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거나, 도심 속 사찰에서 눈을 감는 사람들, 문화센터에서 향을 피우고 차를 내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짧지만 강렬한 1시간의 일탈, '정신적 이완'을 향한 현대인들의 조용한 엑소더스(Exodus)가 시작되었다.트렌드의 변화는 늘 사람들의 결핍에서 출발한다.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변한 기저에는 현대 사회의 만성적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짙게 깔려 있다.2025년 12월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19~59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5 직장인 점심식사 관련 인식 조사>를 보면,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응답자의 상당수가 현재 평균 1시간인 점심시간이 “1시간 30분 이상으로 늘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64.2%)”고 답했으며, 점심시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단순한 식사가 아닌 “업무 스트레스 해소(59.2%)”로 꼽았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런치플레이션(Lunch+Inflation)'의 영향도 있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점심 식사 비용과 시간을 줄여서라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 하며,간편식으로 10분 만에 끼니를 때우고 남은 50분을 온전히 자신의 정신을 환기하는 데에 투자하는 이른바 '런치케이션(Lunch+Vacation)' 트렌드가 숫자로도 명확히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그러니 점심시간은 온종일 쏟아지는 이메일, 메신저의 알림음, 상사의 지시와 거래처의 압박 속에서 쉴 새 없이 각성 상태를 유지했던 우리의 뇌에 중간 휴식을 제공하는 신박한 시간인 셈이다.교감신경이 극도로 활성화된 이 긴장의 끈을 잠시라도 느슨하게 풀어주지 않으면, 오후의 시간은 그저 버텨내는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직장인들에게 정오의 1시간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챙겨야 하는 마음의 산소 호흡기가 되었다.가장 눈에 띄는 산소 호흡기 제공 기관은 미술관이다. 업무로 지쳐버린 차가운 이성을 녹이는 예술의 온도를 찾아 직장인들은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과거 미술관은 주말에나 시간을 내어 큰맘 먹고 가는 특별한 나들이 장소였다. 하지만 이제 미술관은 직장인들의 훌륭한 점심 아지트로 변모했다.* AI생성 이미지국내 미술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2026년 4월 8일부터 6월 10일까지 ‘일상 속 예술, 그리고 예술가’를 주제로 ‘아트 앤 런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25년에도 8월부터 11월까지 매주 마지막 수요일 12시에 진행되었던 프로그램으로 꾸준한 인기에 신청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이 프로그램은 직장인과 성인을 대상으로 점심시간(1시간) 동안 큐레이터, 문학평론가, 미술평론가들의 전시 해석 강연을 듣는 형태이며, 참가자들에게는 커피와 빵 등 간단한 점심 도시락이 제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시립미술관(SeMA)이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예술가의 런치박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관객과 예술가가 만나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일상적 과정을 통해 현대미술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는데, 2015년부터는 기획 전시나 소장품과 연계하여 미술관이 지닌 콘텐츠를 다양한 워크숍과 퍼포먼스, 토크 등의 형태로 선보여 왔으며, 각 프로그램에는 그에 맞는 음식이 제공되고 있다.본관을 포함해서 서울시립미술관 분관 등 다양한 곳에서 한 해에 6차례 정도 진행되는데, 프로그램은 예고 없이 공지가 올라와도 순식간에 매진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서울 은평구에 자리한 사비나미술관 역시 직장인과 일반인을 위한 특별한 '런치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운영해 오고 있다. 최소 5인 이상이 모이면 신청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미술관에서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마치고 전문 큐레이터와 함께 전시실을 거니는 코스다. 큐레이터의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따라 캔버스 위의 색채와 질감에 집중하는 순간, 직장인들은 완벽한 현실 분리를 경험한다. 숫자와 텍스트로 가득했던 좌뇌의 스위치를 잠시 끄고, 감각과 직관이 살아 숨 쉬는 우뇌를 깨우는 것이다.최근 전북 완주의 ‘복합문화지구 누에(Nu-e)’에서 시작한 '12시의 미술관' 프로그램도 흥미롭다.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마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즐기며 큐레이터와 작가의 해설을 듣는 직장인 대상의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문화 향유를 넘어 심리적 안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운영은 4월부터 12월까지로, 1인 11,000원의 참가비를 내면 예술과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다.굳이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점심 식사를 일찍 마치고 잠깐의 시간을 내어 주변에 있는 미술관에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정신적 이완을 경험할 수 있다. 실제로 의학계와 심리학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시간 동안의 몰입도 높은 미술 감상은 우리 몸의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수치를 약 22%나 감소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라고 한다. 예술이 주는 심미적 경험이 단순한 감정적 사치를 넘어, 실질적인 신경학적 치유로 이어진다는 과학적 증거다.전시장 특유의 약간 서늘하고 쾌적한 공기, 발소리를 흡수하는 카펫, 캔버스에만 오롯이 집중된 따뜻한 조명. 이 모든 공간적 장치들은 문밖의 치열한 경쟁 사회와 나를 차단하는 포근한 방음벽이 되어준다. 점심시간 쪼개기 관람을 마친 직장인의 얼굴이 미술관에 들어서기 전보다 한결 부드럽게 이완되는 것은 결코 기분 탓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처방전이 만들어낸 조용한 기적이기도 하다.딱딱한 회의실 의자가 아닌, 부드러운 조명이 내리쬐는 갤러리에 앉아 예술가의 세계관을 듣고 있노라면, 오전 내내 머릿속을 짓누르던 실적 압박이나 보고서의 압박은 서서히 증발한다.문화예술의 영역은 넓으니, 굳이 미술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의 세종라운지에서는 매월 금요일 점심시간 30분(12시 20분~12시 50분)을 이용한 무료공연인 '런치타임 콘서트'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서울시합창단과 시민이 음악으로 소통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유명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로 구성되며, 각 회 차별 4명 이내로 구성된 서울시합창단 단원들의 독·중창 무대로 진행된다. 현장에서는 시민들의 신청곡을 받아 연주하는 이색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클래식 앙상블의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 오후의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카페인을 들이켜는 대신, 모차르트나 바흐의 선율로 지친 뇌파를 다독이는 것이다.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문화센터 풍경도 달라졌다. 과거 주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문화센터 평일 낮 시간대에, 최근 직장인들을 위한 '점심시간 원데이 클래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12시부터 1시 사이, 캘리그라피를 하며 먹물의 농담에 집중하거나, 차(茶)를 내리며 다도(茶道)의 정갈함을 배우고, 혹은 흙을 빚어 작은 도자기를 만든다. 손끝의 감각에 몰입하는 이러한 활동들은 복잡한 업무 생각에서 벗어나 오직 '지금, 여기'의 순간에만 머무르게 하는 일종의 능동적 명상과 같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목적 지향적 삶에서 벗어나, 무용(無用)해 보이는 아름다운 행위에 시간을 쏟음으로써 직장인들은 역설적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과거 우리는 성실함을 미덕으로 삼으며 점심시간조차 아껴 일하는 것을 성공의 지름길이라 여겼다.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마우스를 클릭하는 모습은 바쁘고 유능한 현대인의 표상처럼 소비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끝없이 소모되기만 하는 기계적인 질주는 결국 번아웃이라는 치명적인 고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점심시간, 미술관의 그림 앞에 서거나 사찰의 처마 밑에서 눈을 감는 사람들을 향해 누군가는 “피곤하게 점심시간까지 무언가를 하느냐?”고 묻거나, “잠깐의 현실 도피 아니냐!”고 쉽게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오후의 치열한 전쟁터로 다시 담담하게 걸어 들어가기 위해, 깨진 마음의 조각들을 단단하게 이어 붙이는 가장 치열하고 고귀한 자기회복의 시간이다.우리는 모두 각자의 사막을 걷고 있다. 사막을 건너는 낙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타는 목을 축이고 잠시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오아시스다. 빌딩 숲 한가운데, 하루 중 가장 태양이 높게 뜨는 정오의 시간. 예술과 문화라는 이름의 오아시스가 우리 곁에 있다.오늘 여러분의 점심시간은 어땠는가? 만약 남은 오후를 버텨낼 마음의 연료가 바닥났다고 느껴진다면, 내일 12시에는 잠시 사원증을 벗어두고 나만의 정신적 이완을 위한 피난처로 짧은 여행을 떠나보길 권한다. 캔버스 속 붓 터치가, 귓가를 만지는 음률이 당신을 다시 온전한 '당신'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12시의 오아시스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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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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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2]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등장_합성소비자

칼럼을 쓰려면 그래도 최근 조사업계의 동향이나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니 국내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의 관련 사이트를 둘러 보는 편이다.그런데 작년 여름경부터 일본 업계 사이트에서 ‘가상소비자’라는 단어가 가끔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연말이 되니 여기저기서 이슈가 되어 가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합성소비자’라는 번역어로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었다.번역어가 합성소비자이든 가상소비자이든 영어의 ‘Synthetic Consumer’는, 말 그대로 실제 사람이 아니라 AI가 만들어낸 가상의 소비자를 뜻한다(이하 합성소비자). * AI 생성 이미지이 합성소비자는 설문에 답하고, 제품 콘셉트를 평가하고, 광고 문구를 비교하며, 때로는 인터뷰 응답까지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조사에 참여하는 디지털 소비자”라고 이해하면 쉽다.이 용어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장조사는 늘 빠르고, 싸고, 정확해야 한다는 세 가지 요구 사이에서 흔들려 왔다. 그런데 합성소비자는 이 오래된 딜레마에 새로운 해법처럼 등장했다. 조사 기간을 며칠에서 몇 분으로 줄이고, 패널 모집과 응답률 문제를 완화하며, 반복 테스트 비용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 응답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단계는 아니다. 지금의 합성소비자는 전통 조사를 무너뜨리는 존재라기보다, 조사를 더 빠르게 실험할 수 있게 돕는 새로운 도구에 가깝다.신제품 출시를 앞둔 기업의 회의실. 타겟 고객인 '친환경에 관심이 많고 가격에 민감한 20대 사회초년생'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실무진이 분주하게 움직인다.이전이라면 설문지를 설계하고, 수백 명의 패널을 모으고, FGD을 진행하느라 수 주일의 시간과 큰 비용을 썼을 것이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담당자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몇 가지 조건을 입력하고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단 몇 시간 만에 1,000여 명의 가상 고객들이 신제품에 대해 토론하고, 가격 저항선을 평가하며, 심지어 제품 패키징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까지 리포트로 쏟아낸다.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이는 이미 글로벌 시장조사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며, 바로 합성소비자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다.마케팅이나 조사업계에 종사한다면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가 익숙할 것이다. 기존의 페르소나라면 “30대 직장인 A씨, 주말에는 캠핑을 즐기며 가성비를 중시함”, “30대 워킹맘”, “가격 민감한 20대 남성”처럼 타깃을 설명하는 프로필에 머문다.반면 합성소비자는 그 프로필을 바탕으로 실제 응답처럼 답을 생성하고, 문항 간 일관성을 유지하며, 경우에 따라 개방형 의견까지 내놓는다. 합성소비자는 살아 숨 쉬는 AI 에이전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대언어모델(LLM)과 방대한 실제 소비자 행동 데이터를 학습하여 만들어진 ‘가상의 자아’라고 할 수 있다. 합성소비자는 나이, 성별, 거주지와 같은 단순한 인구통계학적 정보뿐만 아니라, 가치관, 취향과 같은 심리적 특성과 정치적 성향, 소비 패턴까지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그러므로 합성소비자는 주어진 상황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B 테스트에서, 실제 인간처럼 특정 색상에 호감을 보이기도 하고,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장바구니에서 제품을 빼버리는 변덕을 부리기도 한다. 개인정보 침해 우려나 막대한 조사 비용의 장벽 없이도, 무한대에 가까운 실험을 반복할 수 있는 '서버 속의 완벽한 실험실'이 탄생한 셈이다.쉽게 말하면, 합성소비자는 설명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응답하는 캐릭터이니 조사업계에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어떤 브랜드가 신제품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이 제품이 어떤 소비자에게 매력적인지, 어떤 문구가 먹히는지, 어느 정도 가격이 수용 가능한지를 빠르게 검토하는 데 사용된다. 중요한 점은 합성소비자가 조사 전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탐색과 반복 검증을 매우 빠르게 돌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합성소비자가 최근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속도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조사에서는 설문 설계, 표본 모집, 필드 운영, 데이터 정제, 분석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합성소비자를 이용한 잘 설계된 모델을 이용하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아이디어가 여러 개일 때, 어느 방향이 더 가능성이 있는지를 먼저 걸러내는 데 유용하다.두 번째 이유는 비용이다. 반복적으로 조사해야 하는 컨셉 테스트나 메시지 테스트에서 비용 부담은 매우 크다. 합성소비자는 이 중 일부를 먼저 처리해 줌으로써 전체 프로젝트 비용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접근성이다. 모집이 어려운 고소득층, 특정 직업군, 희소한 소비층, 혹은 특정 언어권 응답자처럼 잡기 힘든 대상에 대해 빠르게 예비 반응을 볼 수 있다. 합성소비자를 활용하면 이런 장점이 있으니 최근 국내외 조사기관에서는 적극적인 활용을 모색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미국에서는 대형 조사 플랫폼과 AI 기업이 결합하면서 하이브리드 방식이 빠르게 확산하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Qualtrics의 Edge Audiences는 공개 데이터와 자사 경험 데이터, 예측 분석을 결합해 특정 인구집단의 응답을 합성한다. 이 서비스는 디자인 테스트, 도달하기 어려운 타깃 조사, 아이디어 검증 등에 활용되며, 기존 조사 플랫폼 안에 합성 응답을 직접 통합한 점이 특징이다.유럽에서는 합성 응답의 정확도와 적용 범위를 더 신중하게 보는 경향이 강한 듯하다. 시장조사에선 항상 현실 데이터와의 비교 검증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고, 합성 결과도 실제 패널과 얼마나 맞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그래서 유럽 쪽 논의는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가?”보다는 “어떤 과제에서 현실의 조사와 잘 결합되는가?”에 더 초점이 맞추고 있는 편이다.아시아는 상대적으로 빠른 실무 적용에 관심이 커 보인다. 특히 다국어 환경과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한 시장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아이디어를 선별하는 용도로 합성소비자를 검토하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Toluna가 15개 시장과 9개 언어로 합성 페르소나를 확장한 것도 이런 다국어·다시장 수요와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글로벌 클라이언트와 협업하는 조직을 중심으로 ‘예비 테스트용 AI 응답’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질 가능성이 있다.합성소비자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회사 중 하나는 Toluna일 것이다. Toluna는 2025년 HarmonAIze Personas를 발표하며 합성 응답자 솔루션을 공개했고, 이후 2025년 10월에는 100만 개가 넘는 합성 페르소나를 15개 시장, 9개 언어로 확장했다고 밝혔다. Toluna의 특징은 자사 커뮤니티와 패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별 응답자 수준의 합성 페르소나를 만들고, 이를 단순한 평균 응답이 아니라 개별적 소비자처럼 다룬다는 점이다.Qualtrics도 중요한 플레이어라고 볼 수 있다. Edge Audiences는 자사 데이터 자산과 공개 데이터를 활용해 합성 응답을 생성하며, 제품 디자인, 타깃 검증, IP 보호, 개념 테스트 등에 활용된다. PureSpectrum과의 연계도 주목할 만한데, 실제 패널과 합성소비자 응답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통해 조사 플랫폼 안에서 바로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다.YouGov는 Yabble을 인수하면서 생성형 AI 기반 인사이트 역량을 강화했다고 한다. 이는 합성소비자를 전면에 내세운 사례는 아니지만, 전통적인 패널 사업자가 AI 기반 조사 기능을 흡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밖에 Evidenza, Aaru, Ditto, Simile 같은 스타트업들도 합성 조사 시장에서 자주 거론된다. 이들은 빠른 테스트, 시뮬레이션, 합성 패널 생성 등을 내세우며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또 PyMC Labs는 합성 소비자를 실무 가이드 형태로 정리하면서, 가격 테스트·제품 평가·세그먼트 검증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현재 합성소비자는 보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상황에서 많이 쓰이는 편이라 할 수 있다.우선 첫째로 아이디어 검증이다. 여러 개의 제품 콘셉트나 광고 메시지를 빠르게 비교해, 무엇이 더 유망한지 선별하는 용도다. 둘째는 컨셉/클레임 테스트다. 포장 문구, 제품 효능, 기능 메시지처럼 고객 반응이 중요한 항목을 미리 점검하는 데 유리하다. 셋째는 희소 타깃 탐색이다. 실제 조사가 어려운 세그먼트의 반응을 예비적으로 확인하는 데 쓰인다고 보면 된다.흥미로운 점은 일부 기업이 합성소비자를 조사 후반부가 아니라 조사 전반부에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즉, 실제 소비자 대상 조사 전에 먼저 합성소비자로 수십 개의 아이디어를 좁혀 놓고, 그다음 실제 패널로 다시 정밀 검증을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조사 효율이 높아지고,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도 훨씬 빨라진다.물론 합성소비자의 활용은 명확한 한계와 위험성도 존재한다. AI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니 완전히 새로운 혁신 제품에 대한 반응이나, 인간 특유의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감정선, 미묘한 문화적 뉘앙스를 완벽히 재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영국의 시장조사협회(MRS)는 이와 관련해서 “더 많은 합성 데이터가 항상 더 나은 통찰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라며, 편향된 학습 데이터로 인해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과적합(overfitting)'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AI 생성 이미지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합성소비자 활용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런 미래에 대해 많은 조사회사와 리서처들이 조사업계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AI 중심으로 모든 비즈니스 재편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합성소비자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래서 조사회사가 합성소비자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먼저 관련 기술을 경쟁자로만 보지 말고 조사 체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관점이 필요하다. 오히려 리서처의 역량을 한 차원 끌어올릴 가장 강력한 무기로 합성소비자 기술을 활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첫째, 하이브리드 리서치(Hybrid Research) 모델의 구축이 필요하다.단순하고 반복적인 A/B 테스트나 초기 아이디어 스크리닝, 제품의 사용성 테스트(UX)는 합성소비자에게 맡겨 속도와 효율을 극대화해야 하지만, 사람의 심연을 들여다봐야 하는 복잡한 심리 조사, 숨겨진 결핍을 찾는 심층 면접은 철저히 인간 리서처가 담당하는 식이다. 간단히 말하면 합성소비자에게 방향을 묻고, 실제 소비자에게 확신을 얻는 구조가 될 것이다.둘째, '데이터 통역가(Data Interpreter)'로서의 역할 전환이 필요하다.이제 데이터를 수집하는 행위 자체의 가치는 하락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AI가 쏟아낸 방대한 결과물 속에서 비즈니스적 가치를 찾아내는 통찰력이다.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그 결과가 현실의 사회적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해석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셋째, 날카로운 '의문력(Questioning Power)'의 내재화가 필요하다.합성소비자에게 훌륭한 대답을 얻으려면 훌륭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프롬프트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능력은 물론, AI가 내놓은 매끄럽고 그럴싸한 결과물 앞에서도 “왜 이 타겟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이 데이터에 숨겨진 편향은 없을까?”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파고드는 질문하는 힘이 리서처의 핵심 경쟁력이 되리라 본다.마지막으로, 공감적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합성소비자가 아무리 정교하게 인간을 모방한다 해도, 그들은 타인의 아픔이나 기쁨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한다. 기계가 도출한 차가운 인사이트를, 클라이언트와 실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공감의 언어로 번역하여 전달하는 것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기술은 거들 뿐, 결국 본질은 사람이다”랄까.합성소비자의 등장은 시장조사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한 물리적 제약을 없애고, 리서처들로 하여금 인간 행동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게 해주는 도우미라고 보면 어떨까 한다.가짜 소비자가 진짜 소비자를 흉내 내는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조사업계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가장 인간다운 통찰과 공감 능력일 것이다. 도구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본질에 집중할 때, 합성소비자는 어쩌면 조사업계의 새로운 변화를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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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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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12] 함께 하니 즐겁지 아니한가_마라톤의 사회학

지난 주 토요일. 아침부터 딸의 움직임이 분주하다.평소 같으면 늦잠으로 시작하는 휴일의 오전을, 어찌 된 일인지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단장하고 뭔가 부산스럽게 시작했다.아하, 오늘이 그 5km 단축 마라톤인가를 하는 날이라고 했지.5km라는 거리를 뛰는 것도 마라톤의 범주에 들어가는지도 의아하긴 했지만, 더 의아한 건 평소에 운동과는 거리를 두고 있던 딸이 갑자기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42.195km라는 오해는 곧 풀렸지만.방에서 스트레칭 이외에는 운동과 담을 쌓고 있던 몸을 걱정해서 5km라도 힘들지 않겠냐고 물어보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힘들 거 없어. 남자친구랑 같이 뛸 거고, 뛰기 어려우면 그냥 천천히 걸어도 돼. 다른 사람들도 큰 부담없이 그냥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자고 참가하는 건데 뭐. 그리고 끝나고 맛있는 삼겹살 먹기로 했거든.”황영조, 이봉주 선수가 그 긴 거리를 고독하게 싸우면서 완주를 해내던 모습을 TV 화면으로 보았던 세대에게는 참으로 신선한 대답이다.‘나와의 외로운 싸움’의 대명사였던 마라톤의 성격도 세월만큼이나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읽은 ‘사우나런(sauna run)’과 관련된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한 아웃도어 편집숍이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모두 8차례, 함께 달린 후 텐트 사우나에서 땀을 내는 모임을 개최했는데 총 114명이 참가했다고 한다.그러니까 이제 누군가 마라톤이나 달리기를 한다는 건 승부를 보는 스포츠에서 출발해서, 건강관리나 체력단련을 거쳐, 친목과 데이트의 영역으로 진출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바야흐로 마라톤과 달리기의 사회적, 심리적 의미가 만개하는 시기가 되었다.* AI생성 이미지지난 3월 28일 경남 밀양시 밀양 강변에서는 5km 벚꽃길을 뛰면서 음식을 맛보는 ‘나이트 런 앤 워크 인 밀양’마라톤 행사가 있었다. 1km마다 놓인 음료수는 ‘땡초 물회국수’, ‘불짜장밥’과 같은 특별메뉴인데, 가족과 함께 한 참가자들은 기록이 아닌 추억을 남기느라 바빴다.같은 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서울 유아차런’에 참가하기 위한 유모차(유아차) 4,000여 대가 모이기도 했다. 유모차를 밀고 8km를 달리는 행사인데, 서울 한복판을 언제 이렇게 걸어보겠느냐며 가족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같은 날 서울 구로구에서는 안양천 벚꽃길을 따라 5km를 완주하고 수육과 두부김치, 막걸리를 무한으로 먹을 수 있는 ‘수육런’행사가 열렸다. 동네 잔치 같은 분위기에 멀리서 온 참가자들도 많았다.이 밖에 경남 합천이 지역소멸 위기 극복을 위해 개최하는 ‘합천벚꽃마라톤대회’, 경북 의성군이 산수유 축제 기간에 개최하는 ‘의성마늘마라톤’, 경북 영주의 ‘소백산마라톤대회’를 비롯해서 ‘경주벚꽃마라톤’, ‘군산새만금마라톤’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지역 마라톤 대회도 우후죽순처럼 열리고 있다.지자체에서는 특산품도 홍보하고 관광객을 늘리는 데에 러닝만 한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 마라톤 참가자를 대상으로 전세 버스를 전문적으로 운행하는 상품도 등장했다고 한다.이렇게 전국으로 번져가는 마라톤 축제는 홀로 달리기를 즐기려는 개인 참가자는 물론이겠지만, 그보다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 또는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더 주목을 받고 있다.이른 아침 한강 공원.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시간인데도, 이미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각자의 속도는 다르지만, 비슷한 리듬으로 발을 맞춘다. 누군가는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는 침묵 속에서 호흡을 공유한다. 이런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달리기는 개인의 고독한 운동에서 벗어나 하나의 사회적 활동으로 변모하고 있다.하지만 이런 달리기는 오랫동안 철저히 개인적인 행위로 인식되어 왔다.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체중을 줄이기 위해, 혹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혼자 이어폰을 꽂고 달리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달리는 동안 타인과의 관계는 최소화되었고, 오히려 혼자라는 상태가 중요한 전제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의 풍경은 분명 다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혼자 잘 달리는 것’보다 ‘함께 달리는 경험’을 선택하고 있다.이 변화의 중심에는 ‘러닝 크루’라는 현상이 있다. 특정 브랜드나 조직이 아닌,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함께 달리는 이 집단은 단순한 운동모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러닝 크루는 느슨하지만 분명한 소속감을 제공하고, 운동이라는 행위를 매개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장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단순히 달리기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감정과 정체성까지 함께 나눈다는 데 있다.* AI생성 이미지그럼 왜 사람들은 달리기를 통해 다시 ‘함께’를 선택하고 정체성을 공유할까.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공유된 경험(shared experience)’이 주는 정서적 보상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목표를 향해 몸을 움직이는 경험은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특히 달리기처럼 일정한 리듬과 반복을 요구하는 활동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같은 페이스로 달리고, 같은 순간에 숨이 차오르며, 비슷한 지점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경험은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감각을 만들어준다. 스포츠 심리학과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동기화(Synchrony)’라고 부른다. 동기화의 힘도 러닝 크루 열풍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 행진하는 군인들이나 합창단, 그리고 함께 달리는 러닝 크루들은 같은 리듬을 공유하면서 심장박동이 비슷한 속도로 뛰고, 발걸음의 박자가 맞춰질 때 인간의 뇌는 옥시토신과 엔도르핀을 강력하게 분비한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우리가 ‘하나’라고 느끼게 만드는 장치다.이때 중요한 것은 경쟁이 아니라 시간의 공유가 목적이라는 점이다. 과거의 스포츠가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을 중심으로 했다면, 지금의 러닝 크루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둔다. 기록을 겨루기보다 완주를 함께 축하하고, 속도를 맞추기보다 서로의 리듬을 존중한다. 이는 성취 중심에서 경험 중심으로 이동한 현대인의 가치관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사회학적으로 보면, 러닝 크루는 현대 도시인의 ‘느슨한 공동체’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다.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는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을 이야기했다. 끈끈하고 깊은 관계는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느슨하고 가벼운 관계는 우리에게 새로운 정보와 뜻밖의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러닝 크루가 폭발적으로 유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전통적인 공동체가 약화된 이후, 사람들은 강한 책임이나 의무 없이도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를 찾기 시작했다. 러닝 크루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이상적인 형태다. 참여와 이탈이 자유롭고, 관계의 깊이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공통의 활동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색함 없이 관계가 시작된다.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각 지역에서 열리는 단축 마라톤 행사 역시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축제’로 기능하고 있다. 5km, 10km와 같은 비교적 짧은 거리의 대회는 진입 장벽을 낮추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경험을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기록보다 ‘그날의 분위기’를 기억하고, 완주 후의 사진과 이야기를 공유하며 그 경험을 확장한다.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달리기’가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된다는 것이다. 러닝은 이제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기록 가능한 경험이자 공유 가능한 이야기로 재구성된다. SNS에는 러닝 크루의 단체 사진, 완주 메달, 새벽 공기의 감각까지 다양한 형태의 러닝 경험이 축적된다. 이는 개인의 일상이 타인과 연결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된다.이 현상은 ‘건강’에 대한 인식 변화와도 연결된다. 과거에는 건강이 개인의 관리 영역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타인과 함께 만들어가는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 함께 달리는 것은 단순히 운동의 지속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지지를 동시에 제공한다. 즉, 러닝 크루는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복합적인 플랫폼이 된다.또한, 러닝 크루는 현대인의 ‘정체성 실험’의 공간이기도 하다. 직장이나 가족이라는 고정된 역할에서 벗어나, ‘러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선택하고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체성은 비교적 가볍지만, 동시에 충분히 의미 있다. 특정 브랜드의 러닝화를 신고, 크루의 티셔츠를 입고, 정해진 시간에 모여 함께 달리는 행위는 일종의 의식처럼 반복되며 개인의 정체성을 강화한다.여기에는 ‘속도의 정치학’도 숨어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빨라져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러나 러닝 크루에서의 속도는 다소 다르게 작동한다. 물론 여전히 기록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함께 가는 것’이다. 이는 경쟁 중심 사회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방식의 시간을 경험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결국, 함께 달린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타인과의 거리를 조율하는 방식이며,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다. 완전히 고립되지 않으면서도 과도하게 얽히지 않는, 현대인이 선호하는 관계의 형태가 그 안에 담겨 있다.그래서일까. 오늘도 누군가는 이어폰을 빼고 달리기 시작한다. 혼자만의 리듬 대신, 타인의 호흡에 귀를 기울이며. 그리고 그 순간, 달리기는 더 이상 외로운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함께 만들어가는 경험이자,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작은 공동체의 움직임이 된다.어쩌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달릴 것인가’보다 ‘누구와 달릴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리라 생각된다.   _ 이완정_『외로움을 소비하는 사회』 저자/(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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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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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1] 질문에서 확신으로_리서치에 불빛을 비추는 가설

조사라는 일은 언제나 질문에서 시작된다.“사람들의 소비 패턴은 왜 요즘 변화를 보이는 것일까?”“이 변화는 진짜 현상일까, 아니면 잠시 스쳐 지나가는 현상일까?”리서처의 하루는 이처럼 명확하지 않은 질문들과 함께 시작된다. 하지만 질문만으로는 끝까지 갈 수 없다. 세상은 너무 넓고, 데이터는 무한하다. 무엇을 먼저 보고 어디까지 파야 할지를 결정해주는 나침반이 필요하다.그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가설이다.가설은 단순한 추측도 아니지만, 맞거나 틀리는 진리의 명제도 아니다. 그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던지는 한 줄의 ‘확신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가설’이라는 단어를 마주치면 언제나 숨이 턱턱 막혔던 석사 논문을 쓰던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두 음절의 단어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던지. 가설이란 도대체 어떤 놈이고,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허공에 손을 내저어 보지만 잡히는 것이 없을 때의 막연함을 그때의 기억으로 다시 떠올리게 된다.지금이야 가설이란 과학적 탐구와 연구의 핵심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가설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가설의 구성요소가 되는 변수(변인)은 무엇이며 어떤 특성을 지녀야 할지에 대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있긴 하지만 가설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리서치 리포트를 건네받은 적이 있었다. 리포트를 좀 평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리서처가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리포트여서 따로 언급할 부분은 없었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 만약 이 리포트를 가설을 중심으로 하는 스토리를 만들어서 구성했다면, 훨씬 클라이언트나 대중에게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더 잘 전달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아마 평소에도 리서치 업무에 가설을 활용하는 것이 양질의 결과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도 높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리서치 업무에서 가설이 도움이 되는 이유는, 방대한 현실을 하나의 탐색 경로로 바꿔주기 때문이다.마치 아무 정보 없이 숲을 헤매는 대신, 나뭇잎의 방향과 바람의 냄새로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가설이 없어도 조사는 원만하게 진행된다. 설문을 만들고,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면 숫자와 그래프는 결과를 그려준다. 하지만 그 조사가 누군가의 판단을 돕거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단순한 통계로는 부족하다.‘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라는 해석의 문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개인적으로는 가설을 세우지 않은 조사는 풍경 사진을 찍는 일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모든 걸 담지만 초점이 없다. 반면 가설이 있는 조사는 렌즈의 조리개를 한 번 더 조정해, 그 풍경의 빛을 제대로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풍경을 담는다는 점에서 둘 다 사실을 기록하지는 하지만, 후자에는 의미의 깊이가 생긴다. 우리는 그 의미의 깊이를 흔히 통찰이라고 부른다.그러니까 가설은 통찰로 이어지는 문을 열 수 있는 손잡이가 되는 셈이다. 여기서 가설이 리서치에 도움을 주는 세 가지 정도의 역할을 이야기해보고 싶다.우선, 가설은 앞서 말한 것처럼 ‘방향을 잡는 사고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리서치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겠을 때’이다. 이때 가설은 그 혼란을 줄인다.예를 들어, “20대 여성의 무알코올 음료 소비는 건강보다 ‘자기통제 이미지’ 욕구에서 비롯된다.”라는 가설이 있다면, 리서처는 응답 속에서 자연히 ‘통제’라는 단어를 유심히 읽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을 지니게 되면 조사결과를 해석하는 눈에도 힘이 생긴다.두 번째 역할은 ‘팀의 사고를 한 축으로 응집’하는 것이다.조사 프로젝트에서는 기획자, 분석가, 클라이언트가 각기 다른 지도를 펼쳐놓고 각자의 빨간 색연필로 지도를 칠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하지만 이럴 때, 명확한 가설이 존재한다면 논의의 초점이 그 가설에 맞춰지게 된다. 관련자들의 모든 대화는 가설을 중심으로 돌고, 각자의 지도가 아닌 하나의 지도를 펴놓고 같은 목적지를 가리키는 것처럼.그때 비로소 조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팀은 ‘같은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마지막으로, 가설은 ‘리서치를 더 창의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조사 초기 단계에서 “직장인들이 조용한 퇴사를 꿈꾸는 이유는 단순한 번아웃이 아니라 ‘자율성 상실’ 때문일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다고 하자.이 한 문장으로 조사 설계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질문지에는 ‘피로도’ 대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들어가고, 인터뷰에서는 일과 자율성에 관한 정서적 표현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힘들다’라는 평범한 데이터 뒤에 감춰진 조사 대상자가 지닌 감정의 결이 드러나게 된다.그럼 한번 가상의 실제 사례를 떠올려보자.한 식품회사가 ‘자기관리형 소비자’를 타깃으로 새로운 브랜드의 간편식을 내놓았지만, 반응은 냉랭했다.처음엔 단순히 인지도나 가격 문제가 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팀 내부에서는 ‘혹시 소비자들이 이 제품을 다르게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제기됐다.그래서 팀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거듭했다. 그리곤 아래와 같은 하나의 가설을 세워보았다.“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건강식’이 아니라 ‘하루를 달래는 위로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물론 그 이후에 진행되는 조사 설계도 이 가설을 중심으로 만들었다. 실제 조사에서 응답자들에게 “하루가 끝난 후 이 제품을 먹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를 묻자, 놀랍게도 ‘휴식’, ‘보상’, ‘자기 위로’ 같은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결국, 식품회사는 해당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건강’에서 ‘오늘을 마무리하는 부드러움’으로 선회했고, 예상보다 훨씬 높은 공감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그날 이후, 팀은 가설을 “현상을 해석하는 문학적인 도구”로 보기 시작했다.물론 위의 사례는 가상적인, 그리고 가설을 상당히 긍정적인 도구를 본 상상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요즘 같은 넘치는 데이터 속에서, 리서처가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가설의 긍정적 힘을 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요즘 같은 데이터 과잉의 시대에는, 오히려 ‘무엇을 믿어야 할지’가 더 모호하기 때문이다.수많은 그래프가 의미 없이 쌓이는 가운데, 리서처가 지녀야 할 것은 분석 기술이 아니라 의도 있는 시선이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가설은 바로 그 시선을 문장으로 바꾼 결과물인 것이다.“20대 남성의 65%가 비대면 결제를 선호한다.”라는 조사결과는 물론 팩트로써는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이유는 여전히 숨겨져 있다.이때 “그 선호는 편의성 때문이 아니라, 관계 피로감 때문일 수 있다.”라는 한 줄의 가설이 등장하는 순간, 데이터는 해석력을 얻고, 리서치는 통찰이 된다.가설은 데이터의 침묵을 깨는 첫 번째 언어인 셈이다.이렇게 가설을 추앙하는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리서치 초보자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물론 이런 질문은 석박사 논문지도를 할 때도 수없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도 역시 연구의 초보자들이었으니까)“그런데 가설이 틀리면 실패 아닌가요?”그러나 리서치에서 가설은 맞히지 못하면 아웃이 되는 게임의 언어가 아니다. 여기에 가설에 대한 많은 사람, 심지어 석사 과정을 마친 리서처도 하는 오해가 작동한다.가설은 세울 때는 충분히 공부하고 심사숙고해서 ‘내가 공부하고 조사한 바로는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하지만, 100% 진리라는 확신이 가설이 아니다. 그래서 논문에서는 통계 검증을 통해 가설을 기각하기도 하고 하는 것이다. 대학원생들도 그리고 초보 리서처들도 그래서 궁금해한다. “기각되는 가설은 쓸모없는 거 아닌가요? 제 조사나 연구가 잘못되었다는 증명이 되는 셈 아닌가요?”가설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 새로운 질문을 낳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가설이 틀렸다고, 기각되었다고 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다시 더 참에 가까운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기각된 가설은 수용되는 가설을 위한 마중물이 되어주고, 배양토가 되어준다. 다시 말해 가설은 가능하면 틀리지 않게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가설이 맞든 틀리든, 그 과정에서 얻어진 탐색의 결과가 통찰을 낳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틀린’ 가설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해준다. 그것은 문제의 본질로 향하는 징검다리인 셈이다.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보자.리서치의 세계는 냉철하다. 하지만 그 냉철함 속을 걸어가는 사람인 리서처도 결국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가설은 리서처의 감정이 다음과 같이 세상과 대화하는 언어이다.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나만의 문장은 무엇일까?”이 물음에서 리서치의 첫 불빛이 켜지는 건 아닐까.그래서 가설은 정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된다.데이터가 모호해도, 응답이 엇갈려도, 가설이 있으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확신할 수 있다.“적어도 나는 이 세상을 이렇게 이해해보기로 했다.”라고 말이다.그 한 줄의 문장이, 방대한 조사 현장을 통찰의 길로 바꾸어놓는다.가설을 리서치에 활용한다는 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일이다.그리고 그 믿음이야말로, 오늘도 리서처들이 다시 ‘다음 질문’을 준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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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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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11] 내 손 안에서 확인하는 실존 _ 볼꾸와 다꾸 이야기

얼마 전 강의를 하러 갔다가 흥미로운 것을 마주했다. 앞자리에 앉은 수강생 한 명이 열심히 강의 내용을 필기하고 있었는데, 그의 볼펜을 보니 시판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볼펜에는 작은 캐릭터가 하나도 아니고 형형색색의 캐릭터가 대여섯 개나 붙어 있었고, 뒷부분은 키링처럼 사용할 수 있는 고리도 달려 있었다. 어떻게 보면 잡다한 장식품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나름 예쁘게 장식을 한 특별한 볼펜이라는 느낌이었다.쉬는 시간에 “재미있고 특별한 볼펜이네요”라고 말을 건넸더니, 밝은 얼굴을 하고 대답했다.“요즘 제가 한참 볼펜 꾸미기에 빠져 있거든요. 줄여서 ‘볼꾸’라고 하는데, 여기 있는 캐릭터들이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이에요.”그러고 보니 몇 년 전부터‘별다꾸’라는 신조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다이어리 꾸미기인 ‘다꾸’부터, 신발 꾸미기인 ‘신꾸’, 가방 꾸미기인 ‘백꾸’, 텀블러 꾸미기인 ‘텀꾸’까지.스티커나 열쇠고리, 작은 플라스틱 장식, 캐릭터 소품 등을 이용해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표현하는 꾸미기가 MZ세대의 소비문화로 자리하면서 ‘별것을 다 꾸민다’라는 뜻으로 ‘별다꾸’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최근에는 연예인들의 포토카드나 폴라로이드 사진을 꾸미는 ‘폴꾸’나 기계식 키보드를 꾸미는 ‘키꾸’, 책상(데스크)를 꾸미는 ‘데꾸’ 등 어찌 보면 마니아틱한 꾸미기도 일종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듯하다.*AI가 만든, 좋아하는 걸그룹 굿즈로 꾸민 데꾸의 이미지두쫀쿠의 유행처럼 금방 사그라들 것처럼 보였던 이런 꾸미기 트렌드는 그 대상을 바꿔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 처음 유행이 시작되고도 5, 6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식지 않는 열기인 듯하다.그래서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왜 우리는 이것저것의 꾸미기에 열광하는지 말이다.이유 중에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우리가 소소한 일상에서 반란을 꿈꾸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그간 고도성장기와 거대 담론의 시대를 거쳐왔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 사회는 저성장 기조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화했다.미래의 거대한 성공을 담보할 수 없는 청년 세대와 현대인들에게, 당장 내 손안에 쥐어진 ‘볼펜’과 ‘다이어리’와 같은 물건은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며, 나의 책상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토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볼꾸’와 ‘다꾸’, ‘데꾸’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우리는 꾸미기를 통해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커다란 세상이 아니라, ‘나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볼꾸와 다꾸의 유행은 겉으로 보면 단순한 취미나 장난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현상이 단순 ‘예쁜 것 좋아하는 MZ의 취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서울 동대문종합시장 액세서리 부자재 구역에 가면, 주말도 아닌 평일 오후에 젊은 여성들, 학생들이 볼펜 몸통과 캐릭터 부품, 비즈 파츠를 고르느라 통로가 막힐 정도라고 한다. 그들이 그곳에서 구입하는 건 실용품으로서의 펜과 파츠가 아니라, 나만의 조합으로 완성된 하나의 작은 세계일 것이다.볼꾸는 기본 볼펜 몸통을 고른 뒤, 각종 캐릭터 비즈, 컬러 참, 미니 피겨를 조합해 ‘나만의 볼펜’을 만들어내는 DIY 체험 소비다. 다꾸는 다이어리 속지, 스티커, 마스킹 테이프, 도장 등을 활용해 한 페이지를 작은 작품처럼 꾸미는 행위다. 어느 다꾸러의 표현대로, 한 장의 페이지는 “어떤 속지를 쓰고, 어떤 스티커를 어디에 붙일지”를 집요하게 고민한 끝에 완성되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들이 ‘기록을 남긴다’라는 기능보다 ‘나만의 구성을 창조한다’라는 경험에 더 강하게 끌리고 있다는 점이다.이 작은 세계는 가격으로 보면 가벼운 장난감에 가깝다. 볼펜 몸통은 천 원 안팎, 파츠는 개당 몇백 원, 한 자루를 완성하는 데 5천 원 정도면 충분하다. 다이어리 속지와 스티커, 마스킹 테이프도 개별 가격만 보면 부담이 크지 않다. 그러나 정서적인 무게로 보면, 이들의 볼펜과 다이어리는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안전한 공간이고, 나를 알아 봐주는 작은 방패이자, 온라인에서 나를 설명하는 프로필 이미지에 가깝다.꾸미기의 배경에는 과잉 경쟁과 차별화의 강박도 읽힌다. 간단히 말해 모두가 ‘그냥’은 싫은 사회의 씁씁한 모습이다.최근 볼꾸 열풍을 다룬 기사 중 눈에 띄었던 제목은 “볼펜 하나도 ‘그냥’은 안 돼!”였다. 이 문장은 우연한 수사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오랜 경쟁 구조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학교에서, 취업 시장에서, 심지어 취미 생활까지 ‘그냥’은 허용되지 않는다. 남들과 비슷하게는 부족하고, 조금이라도 다르게, 더 특별하게 보여야 한다.MZ세대 소비를 분석하는 글에서도, 이들이 소비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희소성 있는 상품에 과열되다시피 하는 이유를 ‘정체성 드러내기’에서 찾는다.한정판 스니커즈나 아티스트 굿즈를 위해 줄을 서는 욕망은, 남들과는 다른 조합으로 펜을 만드는 볼꾸, 남들이 못 본 스티커·속지로 다이어리를 꾸미는 다꾸는 결국 같은 축에 있다.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욕구가, 지금 우리 사회의 경쟁 구조에서 너무 쉽게 자극되기 때문이다.그런데 재미있는 건, 여기에는 두 가지 모순된 감정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하나는 ‘더 이상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싶지 않다’라는 탈동질화 욕구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완전히 혼자가 되기는 두렵다’라는 동조 욕구다. 볼꾸나 다꾸는 이 모순을 절묘하게 봉합한다. 모두가 ‘볼꾸 하는 중’이라는 해시태그 아래 모여 있으면서도, 각자의 펜과 다이어리는 조금씩 다르다. 비슷한 취향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미세한 차이를 내며 ‘나’를 주장할 수 있다.이런 미세한 차이에 에너지를 쏟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과도한 자기 관리와도 닿아 있다. 스펙, 외모, 말투, 취향까지 끊임없이 관리해야 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지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회는 ‘나를 관리하고 있다’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볼꾸나 다꾸는 이 부담스러운 자기 관리의 축을, 상대적으로 무해하고 가벼운 영역으로 옮겨버린다. 우리는 이력서와 자소서를 꾸미는 대신, 펜과 다이어리를 꾸미며 ‘나는 여전히 나를 디자인할 수 있다’라는 감각을 회복한다.하지만 무엇보다 꾸미기 트렌드는 가성비와 소확행의 결정판이기 때문에 좀처럼 식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자산 시장, 치솟는 집값, 불안정한 일자리 구조 속에서 MZ세대는 인생의 큰 레버를 움직일 수 있다는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주거, 직장, 경력 같은 거대 의사결정은 점점 더 운과 구조에 좌우되는 영역처럼 보인다. 이럴수록 사람들이 붙잡는 건 상대적으로 쉽게 조정 가능한, 작은 단위의 만족이다.경제·소비 전문가들은 MZ세대의 소비를 소확행과 욜로의 결합으로 표현한다. 일상에서는 철저히 가성비를 따지지만, 자신을 표현하거나 기억에 남는 경험에는 기꺼이 돈을 쓴다는 것이다. 볼꾸와 다꾸는 흥미롭게도 이 두 영역의 특성이 동시에 들어 있다. 일단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에, 가성비 구조 안에 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나만의 것’, ‘나를 보여주는 것’이자, 하루를 기억하게 해주는 경험으로 기능한다.이런 소비는 ‘큰 건 어차피 내 마음대로 안 되니, 작은 것만이라도 내 취향대로’라는 심리와 맞닿아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볼꾸 매장에 재방문이 잦다는 점이다. 같은 가격으로 계속 새로운 콘셉트를 시도할 수 있다는 건, 반복 가능한 소확행 구조를 제공한다. 여행이나 큰 소비는 한 번에 많은 자원을 쓰기 때문에 자주 할 수 없다. 하지만 볼꾸나 다꾸 같은 ‘작은 소비–작은 만족’ 구조는, 일상의 루틴 속에 아주 자연스럽게 편입된다. 이 루틴은 불안정한 현실에서 사람들을 버티게 하는, 작은 반복 의식이 된다.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욕구도 꾸미기 문화 확산의 원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디지털 피로를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창조하는 시간으로 회복하려는 것이다.디지털 캘린더, 메모 앱이 일상을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MZ세대는 일부러 종이 다이어리와 손글씨를 선택한다. 소비 트렌드 전문가는 이 현상을 ‘구세대의 향수와 신세대의 호기심이 결합된 아날로그 감성의 확산’으로 설명한다.디지털 기기는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쉴 틈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압박을 준다. 알림 창은 끊임없이 뜨고, 메신저는 비동기적 스트레스를 준다. 그 가운데, 다꾸를 하는 몇십 분 동안은 오로지 한 페이지에만 몰입할 수 있다. 다꾸러들은 “그 시간 동안은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저비용의 심리적 충족방법이자, 스스로 만들어내는 작은 명상 시간이다.​볼꾸 역시 마찬가지다. 모바일 화면이 아닌, 실물 파츠를 만지고, 배열을 바꿔 보며 손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사회가 점점 더 속도와 효율을 강조할수록, 사람들은 느리고 비효율적인 활동에서 정서적 안식을 찾는다. 손으로 글씨를 쓰고, 스티커를 한 장씩 떼어 붙이고, 파츠를 돌려 끼우는 일은, 디지털 피로를 상쇄하는 촉각적 경험이다.​마지막으로, 볼꾸와 다꾸는 일상의 불안을 위로해 주는, 손안에 쥘 수 있는 부적이 필요한 현대인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볼펜과 다이어리는 손안에 쥘 수 있고, 매일 들고 다니는 물건이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청년들은 불안정한 미래와 경쟁의 압박 속에서 일종의 심리적 부적을 필요로 한다. 좋아하는 캐릭터 비즈가 달린 볼펜, 정성 들여 꾸민 다이어리는 그 자체로 작은 부적처럼 작동한다.다이어리를 오랫동안 꾸며온 사람은, 다이어리가 ‘친구들과의 시간을 기억해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힘들었던 날, 좋은 날, 무엇을 먹고 어디에 갔는지가 다이어리 속에 붙어 있다. 그 페이지를 넘기며 우리는 “그래도 이렇게 살았다!”라는 감각을 얻는다. 볼펜도 마찬가지다. 수업 시간, 회의실, 카페에서, 손에 쥔 볼펜은 자신을 알아 봐주는 조용한 동료다. 타인의 요구와 평가로 가득한 공간에서, 볼펜만큼은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구성된 물체다.볼꾸와 다꾸가 유행하는 시기는 우리 사회의 불안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와 겹친다. 경기 침체, 주거 불안, 입시·취업 경쟁, 사회 갈등이 겹치며, 사람들은 거대한 구조를 바꾸는 데서 희망을 찾기 어렵다. 그때 ‘작고 귀여운 것’에 몰입하는 행위는, 현실 도피라기보다 생존 전략이다. 거대한 불안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대신, 손이 닿는 작은 물건에 마음을 쏟으며 하루를 버틴다.이런 의미에서 볼꾸나 다꾸는 ‘키덜트(키즈+어덜트)’ 문화와도 통한다. 어린 시절의 놀이 방식을 어른이 된 뒤에도 유지하는 건, 책임과 의무로 포장된 성인 세계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다.결국, 볼꾸와 다꾸를 비롯한 꾸미기 트렌드는 작은 물건을 통해 삶을 다시 붙잡으려고 하는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과도한 경쟁과 차별화 강박, 가성비와 소확행, 디지털 피로와 아날로그 감성, 커뮤니티와 인증 욕구, 불안과 위로, 유동적인 정체성과 놀이로서의 자기 연출까지, 하나의 볼펜과 한 장의 다이어리 페이지 위에 꾸미기 트렌드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건 아닐지 하는.그래서 볼꾸와 다꾸는, 단순히 ‘요즘 젊은이들의 귀여운 취미’로 치부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작은 물건들 안에는,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감정 구조와 생존 전략이 집약되어 있다. 거대한 구조를 바꾸기엔 너무 작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너무 불안한 사람들이 택한 방식. 그것이 바로, 손안에 쥔 볼펜과 다이어리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다시 붙잡는 일이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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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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